불발된 꿈
내 인생에서 꾸었던 꿈들은 나와 나의 생각들과 함께 하였다. 완전히 내 몸속으로 파고들었으며 기분의 색을 변화시켰다.
<에밀리 브론테 Emily Bronte>
폭풍의 언덕에 다녀온 사람이 있었다. 진한 퇴비냄새와 흙탕물로 질퍽거려서 앉기 힘든 암울한 땅,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한다는 하늘과 인적 없는 길, 거친 바람과 색깔이 불분명한 공기를 보고 느끼며 브론테 자매의 글은 삶을 그대로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곧 음침하고 공포스럽고 위협적인 방황들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잘생긴 연쇄살인범을 사랑한 얼빠진 배심원이 법정에서 추방당했던 사건도 있듯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현실을 추방했었다.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습기와 도박, 죽음과 이별, 방황과 무상이 뒤덮인 필연적인 은둔에서 끄집어낸 인간상임을 확인하는 순간 별난 기쁨에 황홀해졌다. 설사 갇힌 생활이 계속되더라도 이 모든 걸 환상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돌파구가 있다니 꿈만 같았다. 이후로 나약한 자의 도태된 기대는 오랫동안 불발돼버린 신호였지만 말이다.
한때 꿈을 적어볼까 했다. 꿈을 적으면 하룻밤에 소설 두서너 편은 능히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의지만 불타게 되는 것이, 편히 쓸 수 없는 번잡한 생활의 고통이 널려있기 때문이라 위로하지만 사실 나는 너무 게으르다. 의미를 상실해 버린 속박 속에서 늘어진 테이프의 소리를 낸다. 누군가를 대변하며 쓸데없는, 그런데 꼭 해야만 하는 대사를 반복하고 적어 내지만 그건 무의미한 발설임을 깊게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은, 굳이 한다면, 내 존재를 숨기고 싶은 폐쇄적인 성향의 미끼를 물어버렸다. 이 조그맣고 둥근 세계 속에서 오직 표현만이 중요한 화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생을 방심하며 바라보기엔 다락너머 보았던 세상이 격했던 자의 선택이랄까.
성장기 이전부터 그러니까 기억하기론 서너 살부터 시작된 불면은 간혹 꾸는 꿈들을 훼방하곤 했다. 아니, 꿈을 부르는 촉진제였을 것이다. 깊게 자지 못해서 약하게 들리는 뒷산의 기침과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내는 고함은 그대로 꿈속 배경이나 소재가 되곤 했는데, 꿈의 기록을 우연하게 조사하면서 이 사실을 발견했다. 누군가를 잔인한 극치감과 생생한 육감으로 살해하고 현실에서보다 더 격렬하게 보이지 않은 얼굴의 그대를 사랑하며 생명을 낳고 버리는 관을 수도 없이 통과하는 모험이 기억나지 않는 어제와 그날에 읽었던 소설이었고 노래의 일부였고 주변의 다툼이었으며 TV 속의 조각이나 영상이 던진 파편임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허탈해졌다. 짧은 시간 동안 격랑 치는 인생에서 노를 저었는데 모두가 꿈이라니 호접몽(胡蝶夢)의 실현 같아서 진지하게 도를 닦거나 건전하게 살아야겠단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어제의 단편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몇 차례 현실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닐 것 같은 이야기라고 굳게 도장을 찍었으나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내가 있었고 인생에서 꾼 꿈들은 그렇게 나와 나의 생각을 엮어 지금의 날 만든 것인지, 내 몸속에 자리한 그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런 회전을 겪으면 완전 머리 자체가 돈다. 알록달록하던 기분이 하얗게 변한다. 꿈을 꾸고 눈을 뜨지만 어디에 사는 내가 진짜 나일지 묻는다. 내가 사는 동네, 만나는 사람, 엮이는 인생들은 어디가 시작이고 종점일까.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한 명은 넘었고 한 명은 쓰러진, 막혀버린 도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절박한 인식은 '자신의 삶을 그대로 쓴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토해내는 자로선 그게 잘 쓰던 못 쓰던 굉장한 고통이 아닐까 싶어 오늘의 꿈은 불발된 거미줄이다.
2005. 3. 4. FRIDAY
모두가 잠든 밤은 매력적이다. 수다스럽던 사람들도 조용해지고 귓가를 울리는 소음들도 하나둘씩 잠잠해진다. 건전지가 떨어져 버린 인형술사가 놓아버린 마리오네트는 하루종일 실에 매달린 팔과 다리를 내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불이 꺼지고 사방이 어두워지면 가슴속에 불꽃이 켜진다. 잠이 없으면 할 일이 많아진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공상을 한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인 밤에 다른 사람을 초대한다면 잠시나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일 수도 있겠고 연인과 뜨거운 사랑을 할 수도 있겠고 가족들이나 지인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함께 한 그들도 잠이 든다.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는데, 어떻게 속설과는 거꾸로 된 건지 요즘은 몸이 피곤해서 쉼이 필요한 나를 발견한다. 남들보다 몸을 많이 써먹긴 했다. 꿈속의 꿈들은 많이 사라졌다.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상상과 열망으로만 남겨두었던 시간에서 벗어난다. 하나둘 시간의 촛불이 켜진다. 존재를 비추는 흔들리는 그림자 위로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는 것은 살아갈 날들을 적어가는 것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깊고 두터운 감정의 윤색을 더해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잠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