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DDLE SMILE

인생, 수수께끼의 시작

by CHRIS
[RIDDLE SMILE] 2024. 4. 22. PROCREATE. IPAD. DRAWING by CHRIS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장난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상대를 바라보고 논다는 건 그만큼 여유도 있단 소리다. 마음 편히 수수께끼를 낸다. 초중급 난이도를 단계별로 설정하고 일차원만 펼친다.


딩동.


"80% 전멸입니다."

"이런, 너무 어려운가? 수준을 낮춰 봐? 아니다. 나름 시간 내서 수수께끼를 하기로 했는데 중급이면 이름에 걸맞게 레벨업을 해야지, 낮추는 건 게임의 본질과 어긋난다. 항상성을 잊지 말자."


이차원을 살짝 꼬아본다.

딩동.


"2% 남았습니다."

"뭐야? 정신력이 이리 약해빠져서야! 아니지. 나를 미친놈으로 보는 게 틀림없어. 에이! 나도 모르겠다. 먹고 떨어지는 사람 있든지 말든지."


문제를 낸다.

휙-

휙-

전멸

삑삑삑.


"아. 시끄럽다. 오늘 블라인드 테스트는 무리인 걸로 결론짓는다. 역시 시험관도 적성이 아니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짙었을 땐 베 짜는 아라크네처럼 관계의 거미줄을 사람들 사이로 분주하게 쳤다. 초등학교 때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선생님부터 다른 반 학생까지 모두가 아는 유명인사였다. 낯가림도 없었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말을 거는 팔랑개비였다. 아버지의 출근시간과 맞춰 집을 출발했다. 아이들은 지각도 하고 월요병처럼 학교를 가기 싫어하지만 나는 학교 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정확하게 다른 말로는 어렸을 땐 시간이 남아돌았다. 7시 10분에 집을 나와서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가면 7시 반에 도착했다. 천천히 걸으면 7시 40분 정도 되었고, 다른 동네를 거쳐 샛길로 걸으면 7시 50분이 된다. 가끔 6시 50분에도, 혹은 6시 30분에도 집을 나섰다.


"넌 학교가 좋아?"

"글쎄. 오고 가는 길이 좋아."

"응..?"

"그러니까 교문 열리기 전에 가면, 학교 담도 넘고 중문도 개구멍으로 가고, 잠겨진 교실 문도 창문으로 넘어간다 이거지."


나는 훤하게 열린 문으로 누구나 들어가듯이 허겁지겁 시간에 맞춰가는 게 재미없었다. 왜? 난 살아있으니까. 굳이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살 필요가 있을까? 매일 학교를 다른 방식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등교방식도 바꾸면 학교는 재미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담을 넘다 보면 수위아저씨한테 걸리게 된다. 나중엔 수위아저씨가 그랬다.


"학생. 내가 문 열 때 와. 그래도 안 늦어. 열의가 넘쳐서 보기는 좋다만 자꾸 담 넘으면 다친다. 학교가 좋다는 학생은 자네가 처음이야."




취학 전 유치원 때는 더 극성이었다. 그 당시 일 년만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들과 달리 사회생활이 좋다고, 유치원을 드물게 두 번 다녔다. 집에서 애들하고 노는 것은 물리게 했으니 사각형 공간에서 놀아보고 싶었다. 역시 새벽부터 유치원을 갔다. 여섯 살 때는 아버지 출근시간 맞춰 통근버스나 지프차를 타고 갔다. 일곱 살부터는 부지런히 걸어서 유치원까지 갔다. 그때 내 발걸음으로 삼십 오분 걸렸다. 느낌상 한 이 킬로미터는 안 됐다. 유치원엔 아무도 안 와서 놀이터에서 한 시간씩 체조하고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타고 놀았다. 그러다가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때 집에서 삼 사분 거리의 영미도 같은 유치원에 온 것을 알게 됐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유치원으로 가던 직행노선을 틀어 그녀 집으로 출근을 했다. 모두 자고 있던 7시 15분. 똑똑. 똑똑.


"... 헉.. 누구냐!"

"저요. 영미 일어났어요?"

".. 아하ㅡ함. 우리 모두 자고 있었다. 도대체 몇 신 게야?"

"7시도 넘었어요. 식사 안 하세요?"

"밥도 안 했구먼. 근데 어쩐다. 애들 다 자고 있는데."

"제가 깨울게요. 식사 준비하세요."


지금 생각해도 난 뭔 생각이었을까 싶다. 어른들은 눈곱도 떼지 않고 잠에 절어서 문을 열고는, 문 앞에서 말똥거리는 날 보고 엄청 웃겨했다. 애가 잠도 없고 아침부터 남의 집에 와서 식모질이라니, 게다가 오지랖도 넓었다. 영미 동생 둘 모두 씻기고 밥도 먹여주었다. 7시 50분쯤 영미의 등교준비가 끝나면 같이 집을 나섰다. 친구와 함께 유치원 가는 길은 즐거웠다. 발걸음이 느린 영미와 보폭을 맞추면 아이들과 비슷하게 원내로 들어갔다. 삶이란 그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거잖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무리를 짓고 새로운 단원을 공부하고 새로운 배움과 관계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기이다. 학창 시절에는 삼월이 새로운 시작이었는데, 미주권이나 중화권 사람들이 팔월의 휴가를 끝내고 구월을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하는 것을 볼 때면 사회에서 형성한 규칙이 새로움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통해 학년보다 미리 공부해서 미리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사전에 익혀 놓아도 어차피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

일을 하다 보면 꽃피는 춘삼월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진다. 요즘처럼 경기가 잘 안 돌아갈 때면, 언제나 사람들은 경기가 좋을 때는 과거라고 말하겠지만, 매해가 고민스럽고 매달이 힘들고 매일을 변화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현재가 오히려 정상 같다. 무엇인가 하기 싫을 땐 그 경계선을 넘어버리면 편해진다. 인생이 모호하게 돌아갈수록 걱정을 가볍게 날리던 어린 시절의 대담한 마음가짐으로 돌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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