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SE DES FLEURS

<폴린느와 폴레트 Pauline and Paulette> 꽃의 왈츠

by CHRIS
[Pauline and Paulette, 2001] POSTER IMAGE DESIGN by CHRIS


풍성한 몸매의 싱싱한 꽃은 보기 좋으나 병든 꽃은 얼마나 초라하게 줄어드는지 그 허약함이 눈길을 잡아끈다. 병든다는 기준도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갈래로 나뉜다. 누구나 허리가 굽혀지고 머리가 바래고 이빨이 빠지고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시간의 썰물에 밀려가게 되겠지. 아름다움도 시들고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갈 터인데 난 늙으면 어떤 모습일까? 장미와 사랑, 얼음물 속의 장미...


자기만의 성에 갇힌 아가씨. 영원히 늙지 않을 숟가락과 포크를 내려놓는다. 슬리퍼 한 짝을 끌고 초록색 물조리개를 들고는 정원의 아름드리 꽃밭에 물을 뿌린다. 꽃향기가 물씬 풍기고 파란 하늘을 보는 까만 두 눈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것이 행복일까? 삶은 하나의 놀이라네.


어느 시골 마을 예쁘장한 이야기, <폴린느와 폴레트>. 신경질과 귀먹음조차도 자매에겐 간략한 언어이며 깃털보다 가볍다. 바다보다 무거운 애증을 둘러싼 소품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온통 소녀들의 상징인 핑크빛 색실로 채워져 있다. 인형들과 꽃 포장지, 동네 의상실과 오페라타의 소소한 공연까지 자잘하게 화사하다.


우리들의 삶에는 하루의 시시함이 소 혓바닥보다 더 질척하게 미끈거린다. 매일이 바뀌는 듯 하나 그대로인 일상의 소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무시한다. 장미 백 송이를 바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낭만일까. 차라리 장미 가시같이 무용한 무기로 찔러대는 사람 곁에서 장미가 시들 때까지 삶의 모든 향기를 맡는 편이 낫겠다. 불만이 가득 차 오르면 삐딱한 시선으로 타인의 말을 못 알아들게 되지만 이해의 단계로 넘어가면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더 쉬운 일임을 알게 된다. 택시를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면 내가 말하게 될 주소는 어디가 될까? 여전히 주소불명인 가자미 동굴이 되는 것은 아닐까.


파도가 일면 해변을 바라보던 여인은 날아가는 새에게 손을 벌린다. 그녀의 손에 들린 컵이 깨지고 가늘게 주름진 손은 바닥에 누운 사람들의 흰머리를 쓸어주겠지. 차가운 돌은 딱딱한 얼음이 되고 뜨거운 가슴 위에서 녹은 목마름은 네모난 상자에 담길 거야.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의 [꽃의 왈츠 Valse des Fleurs]에 맞춰 춤을 출 사람 어디 있을까? 왈츠는 혼자 출 수 없는데 나를 대신한 새는 어찌하여 저 바닷가에서 맴도는가? 꽃이 시들기 전에 물이나 주러 가야겠다.


2005. 5. 15. SUNDAY



환상적인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호두까기 인형의 마법이 풀려서 왕자와 클라라가 행복한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것 같다. 성질 더러운 공주가 저주에 걸린 개구리 왕자를 깨어나게 하려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개구리를 벽에다 집어던져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경기 어리게 얼음이 갈라져야 잠자던 개구리도 봄이 왔나 싶어서 울음소리를 크게 낼 테니까. 우리의 삶은 모두가 꿈속의 꿈이다. 현실은 상상과 기대와 달리 감동적이지 않다. 누군가에게 안정은 누군가에게 불안이요, 누군가에게 사랑은 누군가에게 구속이다. 타인의 아픔을 감싸는 것도 그렇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아픔에 허덕이는 것도 사실은 모두에게 힘겨운 것이다. 매일이 아프다고 해도 그건 거짓말이요, 아프지 않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말이다. 봄인데, 꽃봉오리는 아직 담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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