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생활화, 중국식 입찰
떼로 몰려다니는 중국인들을 경시하거나 옷차림이 허름하다고 혀를 차던 전 세계 사람들은 생산기지를 넘어 소비의 본거지로 올라서고 있는 중국인들의 주머니를 주시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소비와 반목되게 그들의 안목이 세련되지 않았음을 이용하여 재고를 팔아치우거나 부호들에게 최고의 신품을 맛보게 해서 시장가격을 높여버리는 소유욕과 체면 자극전략도 많이 보게 된다.
중국 사람들과 있다 보면 모든 회의와 삶의 주축에서 돈이 중심이 되고 돈을 목표로 삼는 직접적인 욕망을 서슴없이 표출하는 점에 놀라게 된다. 현장에서 일할 때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발현되는 중국인들의 상술과 돈에 대한 투지, 열의에 경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의 중심은 돈이고, 삶의 중심도 돈이고, 재미도 돈이고, 여자도 돈이고, 노는 이유도 돈이고, 친구관계도 돈이고, 가족을 유지하는 것도 돈이다. 돈, 돈, 돈, 듣다 보면 정말 돈다. 돈에 대해 직접 대놓고 말하는 것은 고상하지 못하고 쑥스러운 것으로 배워온 나로서는 돈이 절실해지는 순간에는 돈이 요물스럽게 경배의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돈을 잘 써야겠다고 몇 번씩 다짐은 하나, 무절제한 투자감각이 꽃을 발하는 현장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되는 것이다.
출장기간에 저장성 복합상가 입찰 현장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살포시 얹어 가보았다. 허름하게 지어진 건물 안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인파들을 보면서 누에에서 실 뽑듯이 사람들을 모아 온 상가 주최측부터 고가의 입찰비를 내고 오는 경매 참가자들까지 모두 할 말을 잃게 만들어버렸다. 입찰이 시작되면서 기준을 훌쩍 넘어버린 가격에 입찰자 모두 웃음을 지으면서도, 기하학적인 상승그래프에 호응하여 입찰비의 몇 배로 낙찰가를 뻥튀기하는 몇 분의 시간이 별 볼일 없는 텅 빈 공간을 한순간에 가치 있게 만드는 작업이라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였다고 말할 수도 없고 벌거벗은 임금님이 눈앞에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열정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열정을 다해 인생을 바치려면 무엇인가에 대한 열정이 생활화되어야 하나보다.
2013. 5. 30. MONDAY
한국에서 공유서비스는 따릉이를 제외하고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것도 추운 겨울에는 온몸이 시린 자전거를 탈 일이 없어 공유의 미덕은 일상에서 거의 발휘되지 않고 있다. 유럽이나 중국과 달리 도심 지면이 굴곡이 심하고 도로 폭이 좁고 경도가 심한 한국에서 자전거 타기는 낭만스럽고 멋스러워 보여도 마음먹고 출퇴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산악자전거를 타듯이 허벅지를 단련시켜야 하는 고생스러운 노동이 된다. 거기에 러시아워 시간에 자전거를 이용한다면 신호를 무시하는 끼어듦에 가뜩이나 교통 체증으로 신경이 날카로운 운전자들의 주의와 욕설을 부르는 사이클을 조장할 것이다.
한국에서 공유서비스의 개념은 공유 킥보드나 공공 자전거를 포함한 공유 모빌리티를 이용한 출퇴근 차량 빌리기나 장거리 이동, 여행지에서 랜트카 사용, 카카오 택시나 타타 모빌리티, 우버 택시, 에어비엔비, 공유 오피스와 공유 주방, 공유 창고처럼 이미 생산된 재고와 공간과 현물을 기존의 오프라인 사업 공급망보다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예약 및 호출 방식을 도출하도록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온라인 네트워크망을 이용하여 공유하는 서비스이다. 불필요한 것은 소유하지 않는 소비의 활용성 측면을 부각해 소비자들에게 공공 활용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음을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공유 서비스는 거리가 존재하는 해외 출장이나 타지에서 이동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혹은 노매드를 벗어나 비즈니스 성향을 장착한 채 빠른 시간 동안 정신적 탐색을 채워 넣을 현대의 여행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반면, 장시간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지속적인 공유를 선택하였을 때 빌려 입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가득하여 부대비용과 옵션을 추가로 넣지 않으면 기호에 맞춰 필수적인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낭비구조를 산출하고 소비 서비스를 위한 대기 인력과 잉여 노동을 낳는 부작용을 부른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는 생산과 소비에 따른 자본의 소유와 집중, 증식과 팽창에 기본을 둔다. 후발주자인 공유와 복지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식 공산개념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사회 경제적 관념에 사로잡힌 공유의 마케팅 체질은 소유의 주체가 공공이 아닌 사적인 개인에게 있음을 숨긴 채 인간의 필요를 소유 없이 자유롭게 입맛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소유의 본질에서 아내와 자식, 남편과 연인을 타자와 공유하는 개념은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공간과 사물에 집중하는 공유는 생산 제작의 가치는 폄하되고 소비적 순환에 가치를 이전함으로써 겉표면에서 보이는 형상으로 소비 사이클링의 경제적 설득을 시도한다. 그러나 재산적인 소유권이 공공에 있지 않고 소비재의 위치에서 비교값을 설정하는 자본주의적인 공유는 진정한 공유적인 의미는 아니다. 즉, 공유 이익을 나누는 방식이 제시되거나 실행되지 않는다면 집중적인 소유를 단순히 대중적인 공유로 말 바꾸거나 포장한 것에 한정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중세시대 흑사병과 염병처럼 호흡기를 장악하던 코로나 시기, 자유 민주주의 시민들은 전 세계적 발작과 경기를 맞아 자발적으로 신체적 정보와 행동 데이터를 정부기관과 사설기관에 제공했다. 개인이 소비하는 방식과 만나는 사람, 먹고 자고 향유하는 공간과 개인적인 취향처럼 계산할 수 있는 행적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쉼 없이 바코드와 QR코드로 집약되었다. 과학적인 데이터는 표본이 다양하고 많을수록 정확성이 가산된다. 정부가 집산의 주체가 되는 방식에서 14억 인구는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가독성이 확실한 지표이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예측했듯이 중국이 되었다. 인간의 홍채와 지문, 얼굴 인식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신분증을 핸드폰 속 하나의 앱으로 통합한 중국은 개별자를 인식하는 방식을 몇 가지 옵션으로 두고 자본주의의 본질 이상으로 공산주의의 공유개념을 중앙집권적으로 통합하였다.
인터넷의 동력기인 앱으로 통합되는 세상, 사용과 소비와 충전이 하나의 데이터로 기록되는 전자기계의 눈들은 중독스럽게 시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중국만큼 공유경제가 성공적으로 자본화되면서 집산적으로 운용되는 나라는 없다. 중국의 공유경제 예상수치는 한화로 약 400조라고 추산하고 있으나 코로나 해제 이후 이년 만에 목격했던 전기자동차 절반의 점유를 이뤄낸 중국식 계획경제는 오 년 안에 미국 연방정부 예산을 넘어서는 공유경제 규모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며, 머지않은 시기에 딥시크의 충격을 더블로 선사하며 화교권과 동유럽권, 아프리카와 중동까지 주변국과 연대하여 트럼프와 쌍발로 세계 최대의 돈놀이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 줄 서기가 만연하던 맛집들도 하나씩 사업을 접고 있다. 유행이 지나가면 자극에 길들여진 도파민 수치는 급격히 감소하고, 오랜 기다림 뒤에 숨겨진 열망의 본질이 부상한다. 먹고 쓰는 기다림에 하루 몇 시간을 할애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단단하게 성채를 쌓던 오프라인의 신화는 저물고 있다. 동대문 상가 입찰에 이권다툼이 생기고 사람들이 죽고 폭력조직과 금권세력이 규합하여 부정행위가 뉴스에 보도되던 시절도 불과 이삼십 년 전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유럽에서도 고정적인 판매처에 충성하면서 고객이 돌아다니며 선택하고 구매하던 전통적 매매 시스템은 사양산업에 들어섰다. 제품을 제작한 뒤 소비자로 연결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백화점의 역할이 공간을 근사하게 꾸며놓고 고정된 장소로 고객을 끌어당겼다면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은 기차를 탈지 우주선을 탈지 자전거를 탈지 택시를 탈지 버스를 탈지 고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대상에 대한 취향을 기호로 표식하고 식별자의 인식 형태로 정렬시키는 것이다.
중국식 입찰은 급격하게 전자화되어 쉬인이나 테무, 알리바바와 징동, 타오바오로 꽂힌 다음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은 개개인이 시간을 들여 줄 서도록 자극하는 것을 넘어 개인적인 데이터를 리스트로 합산한 뒤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는 사회이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몰리고 열광하는 것은 개인적인 흥미가 아니다. 아마도 나의 미래적 선택은 자급자족을 실현하며 열정적인 예술적 재료를 남겨놓는 최소한의 마이웨이를 지키는 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