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ER OF NO RETURN

<돌아오지 않는 강> 돌아오지 않는 망각의 현실

by CHRIS
[RIVER OF NO RETURN]


사후와 현세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고 한다. 노잣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건너야 하는 겹겹의 강.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케론(Acheron), 스틱스(Styx), 코퀴토스(Cocytus), 프레게톤(Phlegethon), 레테(Lethe). 망자와 고통, 이승과 저승, 망각과 환생의 경계선은 언제나 이쪽과 저쪽에 어정쩡하게 한 다리씩 걸치고 있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24시간을 인생 쳇바퀴 돌리며 살았던 사람들은 삶이 남긴 비통함과 시름, 증오의 분진을 뜨거운 불에 태워서 기나긴 망각으로 빠져들어야 고통스럽던 삶을 잊게 될 것이다.


가끔 꿈에 시달리다 보면 짙은 어둠을 보곤 한다. 더 이상 어두울 수 없는 진회색 먹구름과 같은 공포.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만난 것 같다. 처음 맞닥뜨렸을 땐 "아. 이게 내 안과 밖의 존재구나. 이 검은 흐름은 도대체 무엇일까?" 되물으며 온몸이 치가 떨리게 무서웠다. 그러나 검은 구름 덩어리에 묻히기로 작정하고 그 구름을 봤을 때부턴 두려움도 친숙해져 버렸다. 그냥 내 옆에 함께 하는 존재처럼.

길을 가다가 잡지 쪼가리를 주웠는데 밑단에 말보로 담배 광고가 있었다. 난 이 빨간 말보로 담배껍데기를 볼 때마다 인디언이 떠오른다. 미국 정부가 매달 꼬박꼬박 던져주는 최저 생활비로 담배종이나 말다가 속상하다고 말보로 담배뭉치를 가슴속 끝까지 피워대며 보호구역으로 위장된 무형의 폐쇄 회로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 말이다.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레드 파워(Indian Red Power) 운동도 무색하게, 말보로 레드 파워에 찌들어버린 현실. 붉은 피의 강이 되어버린 조상들의 투쟁도 거대한 붉은 자본 아래 텁텁한 연기가 되어 날아가는 허망함. 누래진 이도, 썩어진 폐도 보상할 수 없도록 인디언들은 아직도 담배종이에 허한 인생을 말아대고 있을까.


머릿속 강에다 그들이 흘렸던 담뱃재를 털어본다. 물아래로 가라앉는 회색 가루들. 흡사 그들의 조상을 무더기로 태워버린 회색의 죽음들이 부유하는 것처럼 혼탁해진 어두움. 강물이 이 두터운 흙을 걷어내려면 용트림해야 할 것이다. 죽음이 된 조상들의 재와 죽음으로 치닫는 자식들의 분진들. 죽음과 삶이 공존하지만 죽음의 냄새가 짙은 이들의 삶은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의 경계면에 도달한 듯싶다.

연상의 재미는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바로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처럼 말이다. 책방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책방 근처 비디오 가게에 매일 눈도장 찍다가 마릴린 먼로 출연 영화는 다 보겠다고 결심하고 집어 들었던 이 영화. 로버트 미첨이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실망하면서 꾸물떵하게 보다가 점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열이 받아서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했었다. 철새처럼 금을 찾아 서부로의 이동을 꿈꾸는 총잡이, 가수, 하층민의 삶을 다룬 이 영화에는 먼로의 뇌쇄적인 청바지 차림과 유혹적인 노랫소리, 사랑만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낙후된 삶을 탈피하려는 미국인들의 개척 정신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그 시절, 삶의 터전을 빼앗겨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인디언들의 왜곡된 상(像)도 있었다. 영화에선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반항을 위협적인 존재로 설정해 버리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졌지만 빼앗은 자들의 자기 정당화는 확실히 거부감만 더할 뿐이다. 결국 먼로 관련 영화는 여기에서 그쳐야 했다.


가끔은 생각한다. 하나의 신념이나 이상은 하나의 문만 열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운 좋게 맞으면 닫힌 문을 열 수 있고 안 맞으면 가려진 문을 부숴버리는 참극을 낳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오랫동안 다루어 왔던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처럼. 디즈니의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서 보듯이 인디언 소녀와 백인 남자의 지극한 사랑 아래엔 단색톤 뒤로 흩뿌려진 인디언들의 혈흔만이 낭자하다. 하나의 사상이 깃들여진 생산물을 맛본 사람들에겐 그냥 킬링 타임용일 순 있겠다.

사람이든 민족이든 개인이든 다른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억압시킨 채 변질하자고 마음먹으면 드러나는 이면은 반쪽의 진실만이 될 뿐이다. 이자만 까먹고 갚을 원금은 그대로인 집안 거덜내기 방식은 지구 도처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으로 떠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망각의 늪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조용히 바다가 될 수 있도록 잠시 쉬고 싶다.


2004. 9. 9. THURSDAY



세상 돌아가는 방향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누구 집을 탈탈 털어서 자기 집 냉장고를 꽉꽉 채우는 욕심쟁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도둑놈의 자식들이 한가닥 거들먹거리며 세상의 주인 행세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자랑과 어리석음에 동요하지 않고 사실을 담담히 바라볼 힘이 필요하구나 싶다. 인간에게 내재된 힘이란 꼭 재물의 양과 동일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삶에는 카르마라고 불리는 인과응보가 있다. 망각의 평온 뒤에는 자기 구제의 기회가 없다. 영혼의 생과 사, 형벌과 재생이 흐르는 강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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