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홉, 《귀여운 여인》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종이다."
《귀여운 여인, 안톤 체홉 The Darling, Anton Chekhov》
권력의 중심점이 흔들려버린 러시아를 빵과 서커스, 섹스를 통해 사상적 이념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한 번에 얼려버린 차가운 나라라며 외면하지만, 그 얼음의 땅에서 발악하듯 뿜어진 열광적인 한기도 뜨거운 보드카와 마피아 간의 마약과 석유분쟁, 흐느적거리는 가난과 외부의 살인 총격으로 녹아가고 있지만, 러시아는 얼음 속에 침연된 사람들의 본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다. 동토의 땅과 사람들, 역사와 정치, 사회와 문화, 예술과 삶. 그들의 냉기 어린 생각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춤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발산하는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산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하늘로 치솟아버린 마음도 차가운 결정이 되어 땅 위에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러시아 예술은 머리와 가슴에 냉기를 몰고 온다. 얼음에 갇힌 영혼들의 목소리가 쏘아보는 듯한 서늘한 느낌. 러시아 문학도 춤도 음악도 영화도 그 모두가 한기에 온몸이 얼 것을 알면서도 정신을 놓기 어려운 차가운 매력 때문에 얼음마녀의 얼음꽃에 갇힐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냉동인간이 되는 것이다. 눈물이 갇힌 몸 위로 얼음 산을 쌓는다 해도.
얼음 산속에도 따뜻한 이야기는 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이글루의 안은 지펴진 불길도 그대로이고 내부의 얼음도 녹지 않듯이 찬바람이 부는 조그만 가슴에 예외적인 따스함을 불어넣어 준 안톤 체홉과 그의 귀여운 여인도 나의 이글루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에서 사랑이라는 것, 우리라는 것, 나라는 것, 존재라는 것을 살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짤막하게 알려주는 한 여자를 본다. ‘귀엽다’라는 단어를 좀처럼 쓰지 않는 이 입에 귀여움이란 생각도 불어넣어 준 호리병 같은 여인.
난 이런 사람이 좋다.
조용하고 다정다감하고 순진해서 뺨도 붉게 물들고 목덜미에 점 하나 있고 매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여자. 불행도 사랑하고 비극도 사랑하고 초라함도 사랑하고 이기심도 사랑하는 여인. 초라한 유원지의 지배인에게 애정을 흠뻑 주고 재재소 주인에게 푹 반해서 몸을 던지고 유부남 수의사에게 온통 마음을 줬다가 수의사 아들에게 하나 남은 영혼까지 줘버린 여자. 결혼을 세 번 하든 네 번 하든 주위의 이목에 상관하지 않고 언제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 사랑하는 사람이 연극 지배인이면 연극과 무대에 미치고 재재소 주인이면 목재와 공구를 연구하고 수의사면 가축과 도축시설에 열중하고 중학생이면 학교생활과 숙제를 걱정하는 그녀. 도통 비밀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욕망도 생기고 생각도 생기고 말거리도 재잘거리고 계절도 느끼고 자신도 아는 사람. 영혼을 채워주고 존재를 알려주고 생각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을 절실하게 원하고 찾았던 여인. 매사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인은 일상에서 닿기 힘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생각만 해도 식어가는 피가 따뜻해진다.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종이다."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을 떠올리면 기운이 난다. 어느 위치에서 자신을 돌아보느냐에 따라 외톨박이인지 아니면 굳건히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인지 알게 된다.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깊은 늪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슬프긴 하다.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이제는 그 자리가 지난날과 같은 자리가 아닌 것을 아는데 또 그리 슬프게만 볼 필요도 없고 즐거움을 찾아도 되는 것을 아는데 눌러앉지 않는 본성을 다스릴 수 없어서 힘들다. 기억 속의 책장을 넘겼다가 오늘은 너무 가라앉고 만다.
2004. 9. 2. THURSDAY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대상은 하나의 관념을 생성한다. 들리는 대상의 소리도 독특한 청각적인 그림을 형성하는데 일조를 한다. 흐르는 향기와 축적되는 맛이나 마찰되는 촉감 또한 보이고 들리는 것을 넘어서 감각의 깃털을 세워가며 상상의 샘을 흔든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하나의 개별적인 심상이다. 각자의 마음은 머무를 장소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예수가 되기도 하고 부처가 되기도 하고 알라가 되기도 한다. 들꽃이 되기도 하고 처녀가 되기도 하고 사내가 되기도 하고 물고기가 되기도 한다.
길 위에 놓인 개성적인 삶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 다양한 삶의 길에서 마주친 기억의 섬을 들어 올리며 뜻밖에 너무 가벼워서 몸의 중심을 잃을 뻔했다.
시간이 지나가면 생각과는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기억들, 그렇게 예측불허인 것이 삶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