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피 Holy Blood> 환영의 놀음
가슴에 새 한 마리 조각되었네.
성스러운 피 불사조의 피
검은 천사 두 손으로 나비 날린다.
사랑하는 내 영혼이 떠나갔어도
관 속에 거한 죽음 가득 채워도
쓰레기통 뒤지는 배고픈 거지
팔 하나 코 하나 다리 하나씩
코끼리 뜯으면서 환호를 한다.
계집처럼 우는 소리 이제는 그만
아버지의 칼끝으로 남자가 되리.
의자에 묶인 소년은 새를 새겼네.
성스러운 피 불사조의 피
육에 취한 남자는 어이 했더라?
뱀의 다리 파고들다 분노하였다.
아내는 남편에게 두 팔 잘리고
남자는 굵은 목을 가득 베고는
코끼리 호수에는 핏물이 콸콸.
사랑하는 내 영혼이 떠나갔어도
관 속에 작은 죽음 가득 채워도
쓰레기통 뒤지는 탐욕스러운 놈들
팔 하나 코 하나 다리 하나씩
소년을 뜯으면서 환호를 한다.
방에 갇힌 새 두 팔 잘린 새
종이로 만들어진 해골 헤치고
그림자색 누더기 가득 걸치고
알라딘의 램프에 불을 붙인다.
하늘과 땅과 물과 물고기들과
화초들과 나무들과 열매 맺은 나무들
또한 새들과 대지위를 날아다니는 새
남자를 여자를 그 누가 새빨간 원죄로 채워놓았나.
사악한 뱀 그 여자를 우롱하였다.
사악한 뱀 그 남자를 우롱하였다.
열매 준 뱀의 혀와 키스한 사람
엄마 죽인 혼령과 다시 만날 때
저항하는 나의 피와 대적하리라.
서른 명의 형제들아 내게로 오라.
서른 통의 페인트를 칠해 주리라.
미라의 굳은 얼굴 풀린다면은
흰 비둘기 백 마리 날갯짓할 때
달과 예수는 수탉을 업고
백조는 긴 고개를 수그리면서
성녀님의 말을 따라 노래하리라.
가슴에 새 한 마리 조각되었네.
성스러운 피 불사조의 피
검은 천사 두 손으로 나비 날린다.
그대 손에서 나비가 떠나간다면
당신이 나와 함께 떠나간다면
투명한 우상은 되지 않을 것이요.
악몽으로 속죄할 일 더 이상 없네.
내 영혼 말라서 두 팔 벌리면
시체 위에 새 생명이 날아가리라.
순수로, 박수로, 요술 없이도
너 없이 그대로인 나의 얼굴로
인형의 검은 집은 사라지리라.
피로한 내 영혼이 날아가리라.
죽이고 싶을 때 호러 영화를 본다. 토하고 싶을 때 역한 소설을 읽는다. 욕하고 싶을 때 기이한 상상을 한다. 울고 싶을 때 기쁘게 노래를 부른다. 반성이 필요 없기에 정지된 놀이를 펼친다. 세상은 정말 역겹다. 미친놈들이 가득한 곳에 있으면 항상 오한이 난다. 시체를 팔아먹고 고기 뜯은 이빨을 게걸스레 쑤시는 놈들.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면상을 불 찔러 버리고 싶지만 만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머리 꼭대기가 끔찍스럽다. 인간들의 악성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피만 보고 만족하지 않으니까. 추악한 자들에겐 성스러운 피는 없다. 도덕이나 인정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쓸데없이 죽일 수도 없는 것이다. 처절하게 사는 것은 환영과 같은 놀음이다.
2005. 4. 7. THURSDAY
불손한 상상 또한 죄가 된다고 한다.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고 마음을 악하게 먹으면 세상이 검어진다. 사실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을 땐 불쾌하고 불안한 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악한 것들을 바라볼 때 원경의 시선으로 최대한 떨어져서 보려고 한다. 영화 <성스러운 피>의 화면 내부에는 검붉은 피가 가득했다. 페인트를 칠한 허연 얼굴에 물컹한 선지를 통째로 담은 양동이를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반복된 상징성이 지겨웠는지 잠이 들었다.
과거에 종종 기분 나쁜 욕망을 풀기 위해서 괴기스러운 영화를 보았다. 피곤함이 밀려올 땐 감성코드가 안 맞는 비디오를 켜놓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렇게 피곤한 눈을 뜨니 모든 것은 한바탕 꿈이었다는 헛헛한 이야기. 오류적 수식이 가득한 서사의 마지막은 극악하지 않으면 허무하다. “아, 꿈이었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상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