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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MADIC CURSE

김동리 《역마 驛馬》 새와 새장

by CHRIS
[The Bird and the Cage] 2024. 04. 05. PHOTOGRAPH by CHRIS


화개장터 인심 좋은 옥화네 주막을 오고 가는 사람들. 풍각시와 남사당패, 각종 물품 장수들과 허기진 나그네. 하룻밤 연분으로 이루어진 길거리의 삶이 예전처럼 답답하게 보이지 않았어도 체장수의 홋홋한 추억담에 숨겨진 혈연들의 이별 전승이란 여전히 슬픈 것이다. 같은 성씨를 쓰지 않는다고 쳐도 산산조각 깨진 거울을 어떻게 이어 붙일 것이며 엿판을 들고 나선 바지춤을 무슨 수로 잡을 것이요. 놀리 가면 놀리 살아야겠지.


김동리의 《역마 驛馬》, 단편으로 알던 해진 섶이 <TV 문학관>으로 드러나니 생경하였다. 새와 새장, 부모와 자식, 혈연과 얽매임, 엎어진 하늘과 구속된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같은 피가 다르게 발산된 역마살이지만 그것을 가둔 비운의 테두리가 괜히 매정하다. 어디까지가 마지막인가? 들리지 않는다면 감았던 눈을 떠야 할 텐데 남아있는 기운은 쇠약해져만 가고 성대가 부러진 까마귀 두 쌍이 누운 누런 밀밭 위에는 폭풍우가 분다. 그들과 같은 색을 띠던 새는 누운 몸을 받치다가 날갯죽지가 갈라져 흰 명주실이 되었다. 원작에 덧붙인 논외해설은 짧게 몇 마디가 안 되었지만 잊히지 않고 어지럽게 맴돈다.


"스님은 지가 새장을 만들었단 말씀이라예?"

"새장이 없다면 새가 날아갈 리 있겠느냐!"


가는 길이 정체되다 보니 거부하던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 탓을 하던 하지 않든 간에 눈을 떠도 앞은 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튼튼한 새장이고 그곳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새를 안타까워하지만 놓아주지 않고서 창살만 다듬는 이들에게 누군가의 목쉰 외침이 들릴 리 있겠는가.

"왜 피를 내면서 안락한 곳을 버리고 멀리 떠나려 하느냐? 저 하늘에는 연약한 너를 잡아먹을 힘센 무리가 있는데?"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을 몰라준다고 멀어지려 바둥거리는 몸짓만 미워하는 사람들.


"보소. 새장이 없다면, 새가 날아갈 리 있겠는가! 그러니 그대는 새장을 만들지 마소."


2005. 5. 25. WEDNESDAY



새장 밖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그 바람대로 묶인 끈을 끌고 하늘을 날았다. 다시 새장에 갇힐까 싶어서 그 끈은 얼마나 길고 무거울까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둘러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다시 날아갔다가 그렇게 또다시 돌아오고. 어느덧 끈은 굵게 똬리를 틀고 온몸을 감싸는 연무가 되었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구속. 바닥에서 납작하게 기고 있을 때 숨 쉴 수 있는 하늘을 보며 이렇게 내뱉을 것이다.

"꼭대기에서 만나. 바닥은 너무 붐비잖아."

자신이 믿는 세상과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상은 다르다. 커다란 메기 몇 마리가 쑤셔놓은 세상은 흙탕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어느 집에서나 영혼을 잡아먹은 구렁이가 살고 있다. 나와 검은 존재는 친구가 된 지 오래되었다. 세상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역시 영원한 삶과 영원한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새와 새장은 규정된 하나의 단어이고 복수의 구속이며 공허한 관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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