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 DRAMA

인생극장 [시월의 마지막 밤, 잊혀진 계절]

by CHRIS
[Autumn in a Distant Room] 2025. 9. 30. Photographed by CHRIS


시월의 마지막 밤이면 구닥다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와 늙은 호박이 황금 마차로 변하는 동화와 검은 마녀가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이국적 심상 앞에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흥얼거린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한해 한 바퀴씩 수십 바퀴를 돌아 시월의 마지막 밤에 메마른 덩굴로 감기는 가사는 시간을 뚫고 씁쓸하게 혀끝과 귀 안의 기억을 잡아맨다. 나는 토종닭인가 보다. 찬바람이 불면 튀김옷을 입혀서 바삭하게 튀겨낸 후라이드 치킨과 맥주 한잔에 입맛을 다시기보다는, 닭털을 뽑고 닭살이 돋은 알몸을 소담스레 맹물에 담가 뽀얀 국물을 우려낸 닭백숙이 더 그리워진다. 뜨거운 국물을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옛날 노래 가사를 중얼거리며 부드럽게 결대로 찢어지는 살코기를 굵은 소금에 찍어먹고 싶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그 상처를 누구도 보지 못하게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지나버린 일들을 툴툴 털어내듯이 말하고 아픔을 어떻게 정리해가고 있는지 가볍게 말하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검붉은 흔적은 여전히 흉흉한 얼굴을 드러낸다. 글쓰기나 기록은 실생활에 유용한 것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소설이나 이야기는 볼 때 즐겁고 기분 좋으나 가슴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연속 단막극이나 아침 드라마와 같다. 인생은 도큐먼트와 드라마가 만나는 접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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