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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15. 2024

MIDWAY

인생은 독고다이? 아니, 미드웨이.

요즘 졸업시즌이어서 그런가 졸업사가 많이 들린다. 하버드나 스탠퍼드, 예일 같이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지식의 둥지를 떠나 사회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졸업식에 빌 게이츠, 스티븐 잡스, 마크 주커버그나 테일러 스위프트, 저신다 아던처럼 세계적인 기업가나 스타들, 정치가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축사(Commencement Speech)를 듣는 것이 유행처럼 퍼진 이후로, 따라쟁이 한국의 책상머리들도 영업적인 마인드가 발동한 모양이다. 잘 나가는 스타나 성공한 기업가를 모시고 와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에 대해 연설시키면 간판의 극적인 홍보효과와 함께 모객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활동적인 생각 말이다.


어제 연예계 일면을 차지한 인터넷 기사에 보니 국민대 졸입식 축사(祝辭)에서 가수 이효리가 "누구도 믿지 마라. 인생은 독고다이"라고 했다는데, 갑론을박이 많은 댓글들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바쁜 사람들에게 타인이 내뱉는 한마디가 얼마나 의미로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그 이후를 연상한다. 내려올 수밖에 없는 길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길을 떠나야 함에 대해서.




삼 주 전에 J 감독을 팔 년 만에 만났다. 코로나 때 할 일이 없어서 벌크업 했다는 몸은 가녀렸던 마술사 소년의 이미지에서 건장하게 장성한 청년의 느낌을 주었다. 요즘은 확실히 사람들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특히 지속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피부도 탄탄하다. 모자를 벗어서 얼굴이 이랬었나 싶기도 했는데 목소리는 그대로여서 희미해진 인식에 비해 마음은 반가웠다. 프로젝트를 전개할 방향과 어떻게 맵핑을 짤 지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그가 불쑥 말했다.


"정말 독고다이시네요."


쌈박질만 하는 만화에서 쌈마이들이나 잘 쓰는 은어는 괜히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일본색이 있는 말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독고다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었으므로, 곧 부인했다. "무슨 독고다이? 같이 할 건데요."

 



독거노인을 생각하게 하는 '독고다이' 소리를 듣다 보니 90년대 유행했던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설이 떠올랐다.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욕망과 감정에 흔들림 없이 삶에서 꾸준하게 정진하라는 불교 경전 숫따니빠따의 게송(偈頌)인데, 여기서 제목만 차용했던 공지영 작가는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비판은 강하게 냈지만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작가건, 아나운서건, 주부건, 직장인이건, 프리랜서건 오직 가정과 남편, 집과 직장, 자식과 가족, 그 굴레의 틀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했던 여성의 어쩔 수 없는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었다.


여자들 삶의 민낯에 대해서 돌아보게 한다는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소설보다 더 깊이감 없이 현실 밖에서 겉돌았다. 엄마 품에서 입 안의 혀처럼 키워진 아들이 숟가락 하나 놓을 줄 모르고 밥도 못 짓고 빨래 하나 할 줄 모르는데 바깥일이 벼슬인 줄 알고 사는 사람에게 뭘 기대한단 말인가. 얼굴만 믿고 결혼하면 얼굴값 하는 거고, 돈보고 결혼하면 돈에 차이는 게 세상이다. 사실 일상에서 사랑과 일, 두 마리 토끼는 잡기 어렵다. 슈퍼우먼을 자칭하다간 돌연사도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는 그냥 피식 한숨이 나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삶은 소설보다 건조했고 영화보다 더 퍽퍽했으며 그렇게 남자들에 기대서 후회할 만큼 공주스럽진 않았다.


하나의 맹점을 열렬하게 추종하던 사람이나 혹은, 억압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개인적인 삶으로 돌아가면 다시 그들이 거대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억압의 행태를 반복한다. 그것이 남녀를 떠나서 인간이 가진 습관적인 모순이며 텅 빈 사회에 몰두하여 자신이 어디 지점에 있는지 개인적인 성찰을 해본 적 없는 세대의 천형이기도 하다. 난 두 시간을 무료하게 버린 것에 대한 뒤풀이로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켜곤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사실 삶과는 달리 소설이었으므로, 그리고 영화였으므로, 그 모든 건 허구일 수밖에 없다.




미지의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할 선장은 나아갈 방향을 선택한 뒤 표(Cartesian Coordinate System)찍어야 한다. 그런데 Y만 찍거나 X만 찍을 수는 없다. Y와 X를 동시에 고려하고, 입체적인 깊이(Cylindrical Coordinate System) 생각하면 Z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좌표를 상징하는 단어에 'CO'라는 접두사가 있듯이, 공간구성의 기초는 '함께'이다. 누구도 믿지 않고 심장이 쏠리는 대로, 감각만으로 돌진한다는 건 암초에 부딪힐 수 있는 감성적인 접근이다.     


옷도 그러하다. 옷을 맵핑하다 보면 좌표를 찍어야 한다. 디자이너가 예상하는 형태가 페미닌(FEMININE)인가 아님 매니시(MANNISH)인가 그런 선택지에서 나는 항상 중간을 고려해 왔다. 여성도 입을 수 있고 남성도 입을 수 있는, 크기만 다른 그런 지점 말이다. 딱히 여성스럽지 않고, 딱히 남성스럽지도 않은 그 중간, 중용(中庸)이라기보단 중도(中道)의 위치였는데, 패턴 그레이딩(PATTERN GRADING)을 시도해서 크기를 확장하면 우리의 머리가 두 개 거나 팔이 여섯 개가 아닌 이상, 다리가 네 개가 아닌 이상, 들어맞긴 했다. 다만 형태에서는 괜찮은데 여성이 입기엔 어색하고 남성이 입기엔 좀 힘든 그런 지점도 있다. 그렇게 모호한 건 색깔론에서 다시 다뤄야겠다.


모름지기 창작하는 디자이너라면 만들어진 것도 언제든지 변용이 가능하긴 하다. 이미 선택했던 것도 당신이 후회한다면 다시 되돌릴 수 있다. 다만 원래 것을 해체하여 다시 만들려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원래 박았던 선을 다시 뜯고 실밥을 정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부분만 다시 모아서 새로운 형태를 구상해야 한다. 게다가 새로 만든 것이 원래의 것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하여 시간이 아까운 디자이너는 두 번 손보지 않도록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어떤 걸 원하세요?" 그것의 다른 말은 이런 것이겠지.


- 그래서 선택한다면 어떤 지점에 서 있고 싶으세요?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됐든 됐든 좋든 싫든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마음가짐이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첫 발이다. 한마디 더 한다면 책임질 범위에서 후회하지 말고 해 보라는 것, "ACTION!" 시작을 의미하는 행동만큼 중요한 게 더 있을까.




[MIDWAY ON THE SEA] 2024. 2. OPEN-AI DALLE·3  Prompt Design by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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