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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14. 2024

HOMO FABER

도구의 인간 : 창작과 도구의 소화관계

 주변에 보면 기계 장비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 신버전이 나오면 바로 달려들어 사는 그들은 소위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로 남들보다 먼저 기계를 소유한 것에 일차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기술의 혁신이나 조작기술의 변화를 빨리 경험한 것에서 첫사랑을 만난 듯 설렘과 성취감을 느낀다.


 확실히 새로움(NEW)은 시선을 끈다. 보이지 않다가 보인 것이므로 프레시한 공기를 본능이 감지한다. 사람들은 귀신같이 새 물건을 알아본다. 물건을 팔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다가가서 만지고 있는 건 거의 90% 이상이 막 출시된 제품이다. 옆에 아내가 있음에도 치마 두른 여자만 보면 저절로 한눈파는 유부남들처럼, 뱃살 나온 남편보다 근육질 총각의 스포츠 강의에 가슴 떨리는 유부녀들처럼, '새로움은 본능을 자극한다'는 원리는 인간생리의 보편적 현상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도전해 보는 자세는 나쁘진 않다. 사용해보지 않으면 모든 기계는 장식장 속의 장식물일 뿐이니 파텍 필립 노틸러스를 서랍장에 놓아두는 것보다 차고 다니는 게 더 실용적인 논리와 같다.


 카메라 바디는 고사양이 될수록 가격이 높다. 거기에 렌즈와 후레시, 동조기, 반사판 이런저런 액세서리까지 더하면 기본 천만 원은 되어야 장비발로 먹고사는 세트는 갖춰가는 셈이다. 더불어 조명도 필요하고, 삼각대도 필요하고, 규모가 커지면 지미집도 필요하고 고정대도 필요하고 하다 보면 끝이 없다. 컴퓨터도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면 컴퓨터그래픽 칩부터 시작해서 하드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를 까는 것도 돈인데 그것을 운용시키기 위해선 외장 업그레이드는 필수인 것이다. 집에서 살림을 하다 보면 컵부터 시작하다가 국그릇, 밥그릇, 접시, 수저세트, 뚝배기, 찜기, 냄비, 국솥, 프라이팬으로 살림살이가 늘어난다. 그러다가 커피포트,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기, 토스트기, 인덕션, 튀김기, 정수기, 냉장고,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전기장판, 스탠드, 안마의자 등등, 온갖 전기제품과 하이브리드전자제품으로 넘쳐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원하는 장비들은 돈을 써서 갖춰놓았는데, 이걸 사놓고 쓰는 사람은 쓰는가 모르겠다. 사람마다 오감을 활용할 때 꼴리는 순간이나 주목하는 포착점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보는 관점도 다르고 인생도 다른 길을 걷는다. 난 기계는 잘 다루는 편은 아니지만 기술보다 그걸 담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창작과 도구는 매우 밀접하다. 도구가 생각보다 먼저 일 수도 있다. 생존에서 비롯된 도구의 발명은 우리의 위장을 더 기름지게 하고, 우리의 육체를 더 강력하게 무장시켰으며, 우리의 뇌를 더 고도화시켰다. 도구의 인간(HOMO FABER)이 되면서 우리의 두뇌도 함께 창의적으로 발달했고 사고의 확장에 따른 다양한 욕구와 감정들도 세분화되었다. 도구를 통해 생산된 물품의 교역은 과잉생산에 대한 새로운 대처방안을 찾게  잉여(剩餘)가 초래한 분배의 문제를 대두시켰고 결국 강력한 도구를 가진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끌고 옴과 동시에 사회의 계층틀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도구가 만들어낸 사회 속에서 도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들은 도구적 인간의 내부를 형성하는 기초가 무엇인지 파헤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창작예술기원의 다른 말이며, 도구의 탄생과 인류의 생존 역사를 고찰해 보면 도구와 인간은 내외면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땅 위를 벗어나 하늘을 날아가고 대기권을 지나 우주에서 유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창작에 대한 욕구는 맨 몸으로 지구에 던져진 우리들에게 벌거벗은 신체를 가릴 수 있는 권리,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지어낼 권리, 꽉 막힌 가슴을 풀어낼 권리를 부여하는 동기가 됐다.


 작업자의 연장이 다양해질수록 중첩된 멀티플렉스 공간을 만들어낼 확률이 높다. 호모 파베르 즉, 현대의 창작자가 만들어내는 것은 머리로 상상해서 심장에서 감성을 뒤섞은 복합적인 작업물이다. 그것이 사진이 되든, 그림이 되든, 글이 되든, 패션이 되든, 음악이 되든, 건축이 되든, 영상이 되든 상관없다. 카메라 총알을 들었던 손에 날카로운 바늘을 쥔다고 해서 도구를 다루던 창작자의 손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가 오늘 선택한 도구를 통해 당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로 들리길 바란다. 살아있는 이 순간을 소화시키려면 각자의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도구의 인간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The Relationship between Creativity and Tools] Photograph by CHRIS @CAZA, 춘추풀아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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