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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17. 2024

MORTE

어느 관료의 죽음, Death Of A Bureaucrat

지구 어디에서나 아니, 가까운 우리나라 안방에서도 정치(政治)는 치수하기 어렵고 정의(正義)는 이론과 멀다. 뻘짓을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느라 시간을 허비하느니 멍텅구리 TV를 던져버린 것은 잘한 일이다. 아직 빛나는 노트북은 남았지만 말이다.


몇 달 전 지인들과 우스갯소리로 현재 지구에서 죽으면 가장 파급력이 강할 인물은 누굴까 세 명 뽑았었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그중에서 핵폭풍의 차르는 푸틴이었다. 푸틴은 지리적인 패권경쟁에서 동결점을 잊어버릴 정도로 동토(凍土)만의 묘한 균형을 가지고 있다. 미친놈들의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약이다. 가끔 북한에 바늘 하나 찔러 넣고 싶다. 뚫릴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모범근로자, 프란시스코 J 페레즈, 노동정신을 기리기 위해 노동증과 함께 묻히다.”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Tomas Gutierrez Alea)의 영화 <어느 관료의 죽음(La Muerte de un burocrata)>은 관료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삽입적인 애니컷으로 완성된 영상은 기록적인 영상으로 예술가이자 발명가였고 애국자로서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를 완수한 파코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는 의미 없는 형식들과 말도 안 되는 규격을 수호하려는 자들에게 케이크를 던지고 죽음을 위로하던 화환까지 부숴버린다.


화이트칼라의 세계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파일을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고객님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라지만 관료들의 서비스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법률체계는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이며,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대포는 누구의 얼굴에 조준을 가하고 있는가! 공무원으로서 국가에 헌신한 자의 부인과 사촌은 연금 한번 받아먹기가 힘들다. 시신을 발굴하고 묻는 것에 대해 법원 명령을 받고 나면 보건복지부의 승인과 지역보건부에서 재가를 받아야 한다니 차라리 내가 관을 열고 시체의 손 안에서 노동증을 꺼내어 달아나는 것이 낫겠다.


분해해 버린 자동차와 망가진 수송선을 보며 산 자는 꿈 속에서까지 죽은 자의 망령에 시달린다. 비단실을 뽑아낸 누에는 벌레나 다름없다. 탁! 손바닥으로 내장을 쳐도 속을 내보인 그 죽음이 아무렇지 않은 흔한 벌레 말이다. 혁명이 끝나면 평화롭게 정리된 세계는 문어발식 제국주의로 촉수를 벌린다. 독과점이 생겨나고 그 폐단을 줄이기 위해 또 다른 제법이 만들어진다. 곧 예술은 통제된다. 인포메이션에서 12번으로, 20번으로, 다시 46번에서 12번 창구로 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반복하지만 이 번거로운 절차를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절차를 밟고 도장을 받기 위하여 줄을 서고 기다리는 것은 그저 민원인들의 몫이다. 즐거운 사람은 오직 엘리베이터에서 휘파람을 불어대는 노인뿐이다. 시간이 되면 칼같이 퇴근하는 다른 이름의 공무원들은 낱장처럼 흩어진 일감들과 호소에 눈도 껌뻑하지 않는다.


'도장? 내가 찍고 말지.' 그런데 한눈팔다가 문이 잠기고 이 답답한 공간을 떠날 수가 없다! 높은 건물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빠져나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필요하다. 정말 우스운 쓰레기통 탈주극은 무덤과 천사의 사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시체를 묻기 위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 뒤집어써야 하는 한 남자의 분주한 분노를 보여준다. 음악은 타이핑소리에 묻히고 빈민의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하고 있는 관료는 석상의 기도를 받으며 무덤에 묻힌다.


틀 안의 인생을 우회적으로 비튼 <어느 관료의 죽음(Death Of A Bureaucrat)>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무료하고 어긋난 현실을 상기시킨다. 뭔가 어설픈 상황극을 보고 있다 보면, '까마귀가 날면 시체가 감지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깊게 솟아난다. 주변에 힘써줄 사람이 있건 없건 사람을 잘 사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자명하다. 팔뚝을 불끈거리며 인간들은 내면의 무엇인가를 고취하기 위해서 소리쳐 본다. 그것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KNIGHT OF THE LIVING DEAD)> 속 좀비들과 다름없이,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관료(Le burocrata)들에게만 유용한 구호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를 저지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분노가 실현되는 그날은 나의 종말일까? 더운 날의 광기로 치부될 수 없는 발악은 “저 남자 중국말을 한다”는 의미심장하고 엉뚱한 대꾸로 마무리가 될지도 모른다. 묘지를 지키려고 형식을 따라가다 보니 진이 다 빠졌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살 사람은 운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알렉세이 나발가 사망했다고 한다. 가장 추운 곳에서 겨울도 가시지 않은 계절에 갇힌 자의 슬픔은 무겁다. 알고는 있지만 말해지지 않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던가. 동시대를 살아간 지구 저편,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가 편히 쉬길 묵념한다. 푸틴의 또 다른 N극, 나발니는 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놈들의 정당'이라고 부르는 패기는 있었지만 비밀 관계망을 폭넓게 가진 푸틴만큼 밀어내는 자성이 약했고 대항할 힘이 부족했다. 아무리 SNS와 페이스북, 블로그로 비판을 때려도 오랜 시간 동안 촘촘하게 세계를 장악한 검은 요새는 쉽게 뚫리지 않는다. 이러다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미 떠나간 사람들을 기리는 장송곡이 될지 모르겠다. REST IN PEACE.




[REST IN PEACE] 2024. 2. 16. OPEN-AI DALLE·3  Prompt Design by CHRIS




2013. 7. 12. FRIDAY

퇴직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 사기꾼들이 노리는 세 직업 부류가 있다고 했다. 선생님, 경찰관, 군인.  모두 안정적인 제도권에서 일상의 권위를 누리며 사회를 계도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지만 전체에 속한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사회적 경각심은 별개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파일 속의 이야기와 현실은 다를 수 있다. 화면에 갇힌 세계가 힘을 발휘할수록 엉덩이를 들고 직접 삶을 경험하고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When the time for retirement approaches, it was said that there are three professions that scammers target: teachers, police officers, and soldiers. They all hold positions of authority in society, guiding it within the confines of stable institutions. However, the structure of society as a whole and individual social awareness may be separate issues. The story within the file may differ from reality. As the power of the confined world on the screen grows, it would be great if there were more people who lift themselves up and experience life firsthand, using their h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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