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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18. 2024

HAPPINESS

저장된 행복과 유레카

[STORED HAPPINESS] 2024. 2. OPEN-AI DALLE·3  Prompt Design by CHRIS


"행복은 우리가 저장해 두고 매일매일 한 조각씩 떼어먹을 수 있는 소시지가 아니다. 절대 훈제해서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집에 있는 연통 속에 행복의 햄을 잔뜩 비축해두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행복에 대한 동화, 에리히 케스트너(Erich Kästner)



일정한 감정과 태도를 반복적으로 인지시키는 오늘날의 세계는 정형화된 미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부추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배운 것은 책 속의 답안지였던 사람들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 개인 간의 격차를 두게 만드는 날카로운 톱날의 모양을 갖추고 나름대로 굳건한 사고의 틀을 썰어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내리게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누군가 '씨앗은 좋았는데 근본적으로 내재된 본성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만들었다' 말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절하될 수밖에 없다.


고통이 멈추던 고통이 진행되던 삶의 곳곳에는 병자에게 투약하는 모르핀의 효과가 배어있다. 한참 아파하다가 신경을 교란시키는 약물에 희희낙락하여 잠시 동안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보이는, 그러나 투약이 끊기고 갑자기 울음 터뜨릴 때 건강한 사람에게는 미친놈의 발악으로 기억되는 망상이란 약물은 단시간에 생활을 주무르는 권위가 된다. 위장된 행복은 핏 속에 침투되지 않고선 그 위약의 효과를 알 수 없는 순간의 마술처럼 햄이나 소시지보다 비축기간이 짧다.  


언젠가 내 안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좋아하는 기호를 찾는 작업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어렸을 때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말해지는 두리 뭉실하고 편안한 사람으로 분류됐었는데 그 마지노선 밖에서 달랑거리는 날부터 무덤덤한 감정에서 이탈한 티켓을 얻은 셈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뇌리에서 반짝거리는 상쾌한 어지러움이 시작된다. 조그만 선율에도 심장이 터지는 즐거움이 동반된다. 관습에서 탈피할 때 느껴지는 혈관의 감미로운 환희에 세포들이 날뛴다. 스쳐가는 격정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표현들이 과해진다. 그러나 자극적인 고통 속에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감정의 모르핀이 필요하다. 금지된 것을 한번 맛보면 또 찾게 되듯이 자존보단 의존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부작용도 따라온다.


무엇이든 이뤄지는 세 가지 소원이 주어진다면 당장 무엇을 바라게 될까? 빌 것이 너무 많아서 못 빌게 되거나, 빌 것이 너무 없어서 못 빌게 되거나 그 기로에 서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소원을 건네는 우선순위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할 거라는 점이다. 어쨌든 나는 미래의 소원을 빌지 않을 것이다. 소원의 뒷감당이란 일어나기 전과 비교하여 똑같거나 못한 것이 다반사이지 않던가.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행복의 빚은 나에 대한 하찮은 의심보다 못한 것이다.


소원이란 앞에 둘 때 좋은 것이라고 했다. 좋다고 바로 취해버리면 그냥 그것으로 마술은 끝난다. 이뤄질 바람이 있다는 것은 여운처럼 마음에 잔상을 불러온다. 없는 것을 머릿속에 넣고서 상상하게 만드는 깊은 맺음을ㅡ 그리고 그 상상은 내가 만들어낸 손길을 통해 광활한 어둠을 유영하던 초상이 되어 나타날지 모른다. 아, 그날이 놓여있다면 그 즉시 두 손을 하늘에 뻗고 힘차게 소리치고 말 테다. ‘유레카!’


행복은 정말 훈제한 소시지가 아니다. 그러기에 지금 내가 느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이후를 위해서 남겨두면 그건 소원이지 행복이 아닐 것이다. 비록 진창에서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심장을 압박하는 질퍽하고 척척한 한기를 그려야겠다. 내 손이 온갖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마술공이 되게, 자주 유레카(EUREKA)!




"행복하니?"


누군가 물으면 대답하지 않았다. 그다지 행복을 알지 못했으니까. 어깨만 들썩거렸다. '행복' 그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언어였다. 난 사랑도 몰랐다. 그런 단어는 책 속의 장식이었다. 한참 사람들이 사랑 밖에 모른다고 흥얼거리면 그 사랑이 무엇일지 고개를 돌려볼 뿐이었다. 툭 하고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 같이 건드리면 산산이 흩어질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알알이 꿰어진 행복도 쉽게 끊어질 수 있는 플라스틱 줄에 걸려있다고 생각했다.


일전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보면 난 그때 무슨 생각이었을까 어떤 감정이었던가 다시 해석해야 할 때가 있다. 가끔 사랑과 행복은 같은 말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역시 른 말이다. 다만 같이 따라오면 친구 같은 느낌은 있겠다.


매몰된 감정이란 시간을 거치면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는데 하물며 감정이란 더 믿을 게 못 된다. 2001년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보러 간 극장에서 새소리에 물소리에 라디오 소리에 그 잔잔한 감수성에 잠이 쏟아졌다. 기억하는 건 쉬고 싶었다는 거다. 눈을 감다가 뜨다가 졸다가 바라보다가, 그러다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발악하듯 남자의 불만 어린 말투에 잠이 깼다. 목소리도 새됐고 저건 뭔가 싶었다. 난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이 극장에 낭랑하게 울려 퍼진 웃음소리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결국 웃음이 멈추지 않아서 극장을 나와야 했다. 미안. 난 정말 웃겼다. 영화가 끝날 때가 되었거든. 


- 사랑은 변하지. 그럼?




세상의 믿음이란 눈앞의 것들만 인지하는 단순함에 사로잡혀 있다. 시간을 거슬러간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것이 당신 것이었는지, 나의 것이었는지.


2013. 9. 25. 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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