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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22. 2024

MARRIAGE

환상제로

[LOVE, DATE & RELATIONSHIP] CHINA. 2014. 3. 31. PHOTO by CHRIS



"넌 결혼할 거야?"

-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왜?"

- 환상제로. 재미없다. 다른 이야기하자.

"난 재밌는데?"

- 사춘기냐?

"남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밌는 거야."

-그런가?

"그렇다니까."

-근데 네가 물은 건 결혼이었잖아.

"아차차."

- 그럼 넌 할 거야?

"나도 모르겠어."  

- 그러면서 뭘 그런 걸 물어.

"그래도 사람은 필요해."

- 사람이 필요해? 사랑이 필요해?

"둘 다."

- 잘 사람?

"아니! 넌 그것만 생각하냐?"

- 그럼 그게 아님?

"넌 있냐?"

-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 필요하면 생기겠지.

"비밀스럽긴."

- 그런데 갑자기 웬 연애바람이냐? 그 사람 하곤 끝났냐?

"응."

- 별로였어.

"왜 그때 말 안 했어?"

- 네 건데 네가 알아서 하겠지.

"외롭다."

- 또 찾아? 좀 쉬어라.

"아니야. 난 필요해."

- 연애만 내리 할 거야?

"그래. 난 연애만 할 거야."

- 장하다. 어쩌면 결혼보단 낫다.

"누가 결혼하자고 하겠냐?"

- 동거하면 되지.

"아마 날 못 견딜걸."

- 그러게 방 좀 치워라. 나도 더러워서 못 견디겠다.

"청결, 그게 아니라 상황이 말이야."

- 같이 살면 서로 좋잖아. 욕구도 해결되고.

"넌?"

- 난 사랑해도 같이 살기 싫다.

"왜?"

- 날 아니까.

"사랑할 땐 힘든데 헤어져도 힘들어."

- 내가 안보는 게 다행이지. 삼 년 넘어가면 그때 보여줘라.

"넌 많지?"

- 많은 건지 안 많은 건지.

"이게 친구한테도 안 알려주고."

- 너랑 나눌 것도 아닌데 알려줘서 뭐 하냐?



십 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자건 여자건 싱글이건 기혼이건 돌싱이건 술상의 씹을 거리인 '연애'와 '결혼'은 나에겐 명쾌했다. '연애는 쉽고 결혼은 어렵다.' 연애는 마음 내키면 하면 되고 결혼은 마음 내키면 안 하면 된다. 마음 가는 대상이 없으면 말고 있으면 고려해 본다. 모든지 기대감이 사라지면 편하다.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면 끈질기게 생기는 거고 연애를 하겠다고 목매달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결혼이란 제도는 재미없다. 마음의 결속이 보이지 않는다.


서류 뭉치밖에 안 되는 결혼이 정작 중요한 건 아이들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겐 자립할 때까지 안정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다양한 사회체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연약한 존재에겐 신원을 보장할 확실한 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요즘엔 혼인신고만 해도 충분히 법적인 효력은 발생한다. 각종 사회제도의 틀은 결혼증명서라는 서류로 보장하니 여기에 가족의 개념도 함께 포괄된다. 서류 통해 가족록 후 가족구성원이 성립되고 사회일원으로 인정받으며 여러 가지 사회보장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애들은 고려치 않는 딩크(DINK) 족도 많으니 현재의 결혼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필수 관문이라기 보단 인간과 인간이 결합하는 하나의 사회의식이나 가문결속이 탈락된 일반 단어로 잔재해 보인다.


가끔씩 잡담을 주고받던 고등학교 절친은 작년에 결혼했다. 젊을 때 난자를 냉동해놓지 않아서 그렇지만 신랑이 꺾어져도 한참 꺾어진 나이라 아이는 힘에 부쳐서 생략한다고 한다. 둘 다 노력해도 안될 판에 환경오염 때문인지 지구력이 딸리는지 생리적으로도 애를 갖기 쉽지 않다고 투덜댄다. 아이가 한창 클 때 부모에서 조부모로 둔갑할 수도 있고, 또한 아이가 장성할 때면 노인정에 갈 나이라 자기 밥그릇 챙기기도 어려운데 애들 뒷바라지하기가 무섭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대를 잇기 위해 결혼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담백하게 둘이서 잘 살면 그것도 좋다. 주변에 결혼생각이 없는 애들이 많아서 그냥 그런가 했다. 확실히 전문직을 가지고 이성한테 일을 시키다 보면 연애감정이 생기긴 어렵다. 이래저래 잔소리하다 보면 사랑은 고사하고 지긋하게 벗어나고 싶은 부모가 생각날 수 있다. 안 그래도 결혼은 안 하겠다는 녀석이 결혼해서 다들 축하해 줬다. 신랑 앞에서 조신히 못 있고 과거의 연애사를 주절 하게 밝혀서 모두들 그 입을 다물게 하려고 서둘러 케이크를 입에다 밀어 넣었지만 말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요즘은 결혼 안 해도 잘 산다. 결혼 안 해도  잘 못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결혼해도 잘 산다. 결혼해도 잘 못 는 사람도 있다. 갔다가 돌아오고서도 잘 산다. 갔다가 돌아오고서도 잘 못 사는 사람도 있다. 결혼만 따지고 보면 이미 변수가 여섯이다. 결혼 없이 동거도 괜찮다. 제도의 구속 없는  동거도 마음의 결속만 단단하면 오래간다. 마음이 문제다. 동거가 별로면 지속적인 만남도 괜찮다. 다만 서로 자유로운 상태에 있을 때나 책임질 게 없을 때만 유효하다. 단편적인 만남은 별로다. 아침에 깨면 속도 허하고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소모를 몰고 온다. 밤에 보던 허물이 벗겨지면서 제정신이었나 후회도 된다. 육체적인 끌림 때문에 만났다가 그 해소가 끝나면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사라진다. 그러니 이혼이야기만 가득한 세상에서 다양한 만남과 결속의 이야기들이 있다. 결혼만 따지고 보면. 




2005. 11.8. TUESDAY

결혼은 왜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S가 결혼한다고 한다.


“저 결혼합니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도 CC이고 싶었던 제가 졸업할 무렵에야 꿈을 이루고 이제는 함께 삶을 꾸리고자 합니다.”


나는 그 애가 학교 다닐 때 CC를 원하는 줄 몰랐다. 사실 그 아이의 꿈도 잘 모른다. 함께 걸은 용산 뒷골목이나 후암동, 신촌 사거리의 밤은 기억하지만 그 속은 물어보지 못했다. 내 앞에 쌓인 그늘의 부피가 한 짐이어서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들의 마음을 눈여겨 살피지 않았다. 메일로 온 청첩장이 문득 새롭다. 누군가와 터를 만드는 발상자체도 놀랍다. 유부남이 된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열아홉, 그리스로 떠나려 준비하던 한 여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그 애와의 인연도 뜸하게 이어져왔다. 우린 어떤 모습의 친구였을까? 친구, 감정이 섞이게 되면 달라지는 뉘앙스. 군대를 제대한 이후에 유대감이 희미해진 것 같다. 인생을 보는 방식도 서로 달라진 것 같다.


“요즘 어때?”

-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넌 결혼 안 할 거야?”

- 글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결혼에 대한 질문을 통과의례처럼 하는 사람들에게 내 꿈은 내게 산소통이고 기회가 되면 이 인생에 정말 올인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사람들에게는 안정적일 수 있는 결혼이 더 중요하게 보이는가 보다.


“결혼할 기회가 있다면 먼저, 제 시간을 갖고 싶어요. 제가 남보다 십 년을 공쳤잖아요. 마음도 맞고 성격도 얼추 맞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힘든 일이겠지요. 각자의 삶이 있죠. 이젠 맞춰주는 데는 질려버렸어요. 그냥 날 표현하기도 벅차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일찍 깨졌다는 것도 한몫을 하겠죠. 결혼이라는 제도가 살면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받고, 육체적 욕구도 해결하고, 세상과 편안하게 거리를 갖게 되는 방식이라고들 하지만 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울려요.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내 살을 잘라줘야 한다는 것이 두려워요. 칼과 비슷한 것만 보면 섬뜩해지는 거예요.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거죠.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화목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곤 해요. 그렇죠. 포기할 게 많다는 건 지난날과 얽매인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요. 자발적인 의사 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일도 비참한 거예요. 난 자유롭지 못한 삶을 미워해요.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는데요? 한없이 이기적인 놈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평생 모를 테니까.”


나보고 성실하다고 누군가 말을 할 때 신경질이 난다. 비뚤어져야 할 것 같고 억지로 짜 맞추고 있는 이 삶의 구렁텅이를 차버리고 싶은 분노가 솟아오른다. 일상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선 안식이 필요하다. 묶인 밧줄을 태워버리고 달려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단지 혼자서 지낼 생활을 위안하자고 결혼이란 올가미로 누구를 품어야 한다면 그 누구도 알고 싶지 않다. 그 애가 결혼한다기에, 그것도 급히 한다기에, 내 잠재워진 찌꺼기가 수면으로 질질 끌려 나온 것을 목격하고 잠시 경악한다. 내게 있어서 결혼과 사랑은 다른 어휘다. 날 흔들어대는 현실과 꿈처럼. 어쨌든 결혼하면 행복하렴.


결혼식에 대한 우그러진 인상

결혼식만 다녀오면 매번 생각하지만 짧게는 삼십 분, 길게는 이틀 정도에 소요되는 시간과 돈, 나풀대는 치장. 모두 염증 나게 지겹고 지루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식에다가 왕창 투자한다는 기분이 껄끄럽기만 하다. 세상에 돈이 휴지조각이야! 내가 상대와 결혼한 것을 만 천하에 알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만족을 주는가? 난 그룹으로 모인 친지와 친구들, 지인들. 그들에게 몇 시간 잘 보이기 위해서 몇 천 만원씩 던져 넣고는 “오늘 대단히 좋았답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결혼에 대한 공포감은 결혼식에 대한 부담감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소모전은 정말 재미없다. 혼전 서약서, 결혼 서약서. 재산분배동의서. 그게 뭐 하는 짓들인가? 마음 떠나면 그만이다. 하긴 나도 주민등록이나 호적에 누구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나를 누구로 알고 있긴 하다. 요즘은 결혼식만 갔다 오면 피곤함에 몸살을 앓는다. 성장한 신부나 신랑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고 심드렁하다.


“부럽지요? 빨리 결혼하세요.”


제기랄. 결혼식이 지루하다는 것에 구십만 오천 표.




내가 남들 결혼생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지루해하는 이유를 보자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잘 단련된 생각의 근육처럼 솟아오른 피질의 의식이 바탕이 되는가 보다. 결혼 소리만 들으면 재미없어했고, 청첩장만 받으면 아주 부담스러웠다.

 


2007. 7. 31. TUESDAY

박현욱의 글솜씨는 미실의 김별아보다는 실망스럽지 않았다. 근작의 한국작가들에게서 느껴지는 가벼움과 단조로움이 적잖게 실려있으면서도 ‘모노가미’에서 ‘폴리가미’로 넘어가는 결혼의 말미를 기다리게 만드는 말솜씨가 있었다. 사실 둘 다, 섹스를 글로써 적나라하게 풀도록 허가를 받았단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세계문학상은 글로 다듬은 섹스문학상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이렇게 말한다면 작가에게 모욕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촌과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그들에게서 듣는 결혼의 과정은 나로선 이해불가다.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당사자들에게 버겁고 무거운 책임을 요구한다. 결혼을 치르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절차는 곱절인 것 같다. 같이 사는 것이 뭐 이리 힘들어서야! 그렇게 좋으면 일단 살아보면 안 되나? 박현욱은 결혼을 월터 스콧의 말을 빌려 축구장과 같다고 했다. 더불어 축구의 화려한 플레이와 복잡 다난한 결혼의 진행과정을 매치시키며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나는 축구가 별로다. 2002년 뜨거웠던 월드컵도 마지막에서나 잠시 동조했던 난데, 소설을 읽는다고 갑자기 축구가 좋아질 리도 만무하다. 그리하여 애석하게도 박현욱이 피를 토하며 설명한 결혼과 축구의 더블플레이를 반절도 이해하지 못했다. 열심히 읽어도 덕훈과 인아의 사생활이나 말씨름 정도가 귀에서 흔들렸다. 소설을 소설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에서 눈알을 굴렸더니 덕훈의 질투와 인아의 안하무인, 또 한 명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허약한 남자의 심심한 심사는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버렸다. 들어보니 결혼은 참으로 복잡한 것이다. 축구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누구에게는 열광적일 수 있는 재료가 다른 사람에게는 성질에 맞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결혼은 할 만 한가? 난 아직 어른되기 멀었다. 여력이 되는 한, 실컷 싸돌아 다니고 싶다.




이 생각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꼭 결혼을 해야 하나? 내가 결혼한 것과 남이 알아주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마음이 바뀌기 마련이다. 좋으면 그냥 살고 결혼 형식을 취하지 않는 게 좋다. 그렇다고 남들이 돈 써가면서 결혼한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마음이 관대해져서 영업이나 친목에 필요할 때면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 잘 주고 식사도 먹고 온다. 예전엔 뭐가 심통이 났는지 식비(食費)도 아깝게 먹는 것도 마다했는데,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쨌든, 관객의 입장에서 결혼식 프로그램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단조롭기 그지없다. 영화 보고 별표 주듯이 평가를 주면 별표 하나도 아깝다. 내 것도 아닌데 남 것 보는 건 흥미가 떨어진다. 생각 같아선 엎드려 자고 싶지만 예의 없다고 할까 봐 두 눈을 부릅떠 본다. 결혼식에 다양함이 없다는 게 지루함의 근본이다. 진수성찬처럼 보여도 정작 먹을 게 없는 뷔페코스처럼 젓가락만 빨고 있다. 사진작가들이 왜 자기 식구들 안 찍고 요리사가 왜 집에서 요리를 안 해 먹겠는가. 다 먹고사는 것과 직업사랑은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인생 사진 찍어놓고 집에다 몇 년 걸어놓는지 모르겠다.


결혼은 생활이다. 결혼에 환상이 꾸덕하게 들러붙은 말을 들으면 아직 매운맛을 못 봤구나 싶다. 콩꺼풀이 벗겨진 뒤에 흠칫하는 생활습관도 그렇지만 감춰진 사고의 현장에서 바로 욕지기가 나가는 게 결혼이다. 참을 인(忍)은 양측의 가슴에 달아놓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요즘 이혼이야기가 판치는 것도 식상하다. 열불 나게 헤어져서 자랑도 아닌데 헤어진 게 무슨 훈장인지 떠벌리는 모습은 짜증스럽다. 불놀이와 싸움구경이 재미있다는 사람들을 보면 변태로 보인다. 자기 것이나 신경 쓸 것이지 남 것 신경 쓰는 놈치고 제정신 박힌 사람 못 봤다. 결혼이 깨지면 이혼이다. 마음 떠나면 끝이고 배신하면 역시 끝이다. 끝을 각오하고 저질렀으면 깔끔하게 매듭을 잘라줘야 한다. 이혼 안 하고 생활의 편리를 공유해도 되지만 정이 떨어지면 깨끗하게 헤어지고 다른 대상 찾으면 되니 얼마나 좋은가. 스스로 인연지은 건 스스로 결자해지 하는 수밖에 없다. 삶에서 동반자를 만났을 때 마음에 들면 그냥 살면 되고 마음이 오래갈 때까지 함께 살면 된다. 결혼에 투자하겠다는 솔직한 사람도 괜찮게 생각한다. 다만 투자하면 생각한 만큼 뽑기까지 엄청 노력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감으로 베팅하는 코인투자식으로 했다가 실패하면 눈물 콧물 범벅에 집안까지 말아먹 꼴을 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날 밤마다 학생들한테 뺏어온 러브레터나 읽어대며 원맨쇼를 펼치는 시니컬한 B사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문학적 소양이 명작 수준이 아닌 맞춤법과 문법도 엉망인 잡설들을 보는 취미는 없다. 게다가 사랑도 잘 모르는 나한테 꾸준하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상대가 꽤 있는 고로, 음성학적으로 부족한 건 없다. 상황에 따라서 영화 <새엄마는 외계인>이나 이를 카피한 배스킨라빈스 31에서 인기리에 팔리는 '엄마는 외계인' 이름도 달 수도 있다.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마다 그런다.


"특이하세요. 우리 엄마 같지 않아요."

"당연하지. 인사나 잘해."




별별 생각


결혼이나 연애 고려하다 보면 인간적으로 만나긴 어렵다. 성적인 거 모두 빼고 그냥 하게 친구도 괜다. 인생의 동반자에는 친구도 있으니까. 살다 보면 남녀노소 나이와 관계없이 마음이 맞으면 친구로 변해간다. 결국 오래 남은 사람은 희로애락이 점철되지 않는 마음의 친구다. 


 관계에서 뜬금없이 불거지는 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소유(所有)'라는 욕구다. 대상을 소유했다는 뉴런(Neuron)의 결정이 떨어지면 즉시 소진된 전지(電池)처럼 상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서 그저 손아귀에 움켜쥐려는 치기는 과욕한 인간의 본태적인 발상이다. 생존에서도 멀어져 있는 여분의 탐욕이다. 근데 그 소유욕은 일차적으로 발현될 때는 정신보다는 육체에 집중될 경우가 많다. 껍질에 대한 집착은 몇 번 사용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대상을 인지할수록 욕구의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하강하는 게 자연적인 원리다. 다만, 소유욕이 상대의 정신이면 사랑의 다른 이름인 열망, 혹은 갈망과도 맞닿아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감정이든 물질이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소유욕의 문제는 '소유라는 악마'의 심리관계 분석에서 다뤄야겠다.


그나저나 궁금한 건, 등산하면서 연애감정이나 외도욕구가 어디에서 발로 하는지 이해불가다. 요즘 뜨는 테니스도 마찬가지다. 체력단련과 애정감도가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 동물적인 생산에너지의 자연 물리적인 이동방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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