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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08. 2024

TOXIC

후유증, WORD MIX

[NOT NOW, NOT EVER] HONG KONG. 2024. 2. PHOTO by CHRIS



세월의 습기를 머금은 광고 전단을 보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도 말고 결코 손대지 말라’는 백색 결정체의 후유증은 날 선 글자로 배치되어 있다. 날카로운 언어와 습관적인 행위와 생활을 잠식하는 일상의 독극물, 그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안전할까.




불면(INSOMNIA)

불면은 오랫동안 함께 했다. 푹 자야 했던 네 살부터. 불면으로 인해 누구보다 긴 시간을 누려왔지만 불면이 힘들어진 건 삶이 아래로 향했을 때부터였다. 거기에서 벗어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은 간헐적인 불면이 발작한다.



동요(AGITATION)

흥분이나 격양감, 초조함은 시선과 손짓을 건들거리게 만든다. 불안정한 동요는 보는 이마저 흔들리게 한다. 체제가 전복되기 전 사회 속의 소요감과도 비슷한 뇌파의 진동소리는 눈동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섬망(DELIRIUM)

섬망과 치매는 지속성에서 차이가 있다. 급성 기질성 뇌 증후군으로 불리는 섬망은 일시적인 의식의 혼동으로 불린다. 치매는 익숙한데, 섬망은 가까이 있지 않다. 서서히 잊는 것에 익숙해지는 대상을 지켜보는 것은 갑자기 지랄병처럼 발작하는 상대를 바라보는 것보다 알 수 없는 침잠함을 불러온다.



불안(ANXIETY)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Maria Fassbinder)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ngst Essen Seele Auf: Fear Eats the Soul)>는 두려움이나 불안, 공포와 같은 내적 심리기제가 친절이나 미소보다 영혼을 쉽게 흔들어놓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는 객체가 군집된 사회의 시공간에 놓여있을 때, 타인의 시선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화와 언어뿐만 아니라 사고와 삶까지도 이질적인 색상을 가진 남녀의 결합은 이목을 끌어당긴다. 그것은 호감이나 순수한 질투라기보다 경멸과 비웃음과도 같은 비틀림으로 변한다. 인식의 좁은 골목 속에 위태하게 기대 있는 불안은 현재에 서 있기보단 미래에 놓여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내일을 욕망하기 때문에 불안도 생긴다. 과거로 향해 있는 것은 두려움이겠다. 실존의 강렬한 두려움까지 내포하는 인지의 불안(ANGST)은 부재된 내일의 알 수 없는 불안(ANXIETY) 보다 더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피부 염증(SKIN SORES)

다행히 피부 염증은 없다. 다만 모기는 피부엔 상극이다. 어렸을 때 모기에 물리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서 병원에 가야 했다. 세월 따라 모기에 물려도 내성이 생겼다. 생각해 보니 감정적 가려움은 많다.



심부전(HEART FAILURE)

외가 쪽은 심장질환이 있다. 어머니의 심장은 정상보다 1.5배 컸고, 심장 펌프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힘들다고 했다. 심장은 유전학적으로 외가 쪽은 아닌 거 같다. 그렇다고 친가 쪽도 아니다. 내 심장은 안드로메다 S-1097625번 행성에서 전해진 별개의 존재다.



환각(HALLUCINATION)

약을 먹지 않아도 정신 나간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그럴 법하게 사실처럼 생성된 정보도 '환각'이라고 한다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의 바다에서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환각의 대상은 아니겠지?



우울(DEPRESSION)

마음을 깊게 아래로 누르는 우울감은 좋아하지 않는 기분 중에 하나이다. 주위의 모두가 쳐진 얼굴을 하고 있으면 괜스레 힘들다. 돈 벌고 살기도 바쁜데 상대의 우울함을 뒤치다꺼리한다는 것 자체가 어깨가 아프다. 당신의 우울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가끔 망각을 원하는 이유가 후유증이 먼저인지 증상이 먼저인지 헷갈린다. 치유의 목적으로 약을 했다가 중독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본다.


모든 물질적 대상은 독성과 약성의 두 가지 양면을 가지고 있다. 마약은 약의 기능을 이해하고 조절할 권한을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사람, 즉 의사가 신체와 정신의 강렬한 마비를 원하는 환자에게 사용할 때는 ‘약’이라고 불리고, 개인이 몰래 자주 쓰면 ‘독’이라고 불린다. 양약이 될 것이냐, 마약이 될 것이냐는 선과 악으로 성질이 분리된 물질의 양면을 누가 어떻게 얼마만큼 어디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평가와 인식을 달리한다.


삶을 흔드는 원인이든, 그 후유증이든 간에 스스로 그 어두움조차 인식할 수 없을 때는 깊은 망각의 샘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시간에 줄줄이 걸려있는 그 순간들을 잊는 게 좋을까 기억하는 게 좋을까 망설여진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아니 편안해질 때까지 시간들을 놓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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