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Mar 07. 2024

DEPRESSION

전염

[Drain] AD in CHINA 2014. 3. PHOTO by CHRIS


우울함은 전염되기 쉽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책과 원망이 늘어가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만이 쌓여간다. 얼굴의 모든 구멍 밖으로 배설의 욕구만이 충만해 있다. 뭐라고 말하기도 두렵고 쉽게 뱉어내기도 어렵다. 고장 나지 않는 수도관이 있다면 한바탕 쏟아보련만, 새순이 돋아야 할 봄날의 기억은 헝클어진 채로 너무도 잔인하게 뭉쳐있다. <2014. 봄날의 어느 가운데>




그땐 그랬다. 좋아하는 작가, 전혜린을 대표하는 말처럼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거나, 누구나 말하는 ‘그냥 그랬다’처럼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그런 말이 가장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문장으로 보인다. 코에서 흘러내리는 우울은 그다지 공감은 안 된다.


한동안 나의 미성숙한 우울은 귀에서 흘러나왔다.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많아서인지 귓병이 났다. 그래서 귀에 휴지를 대고 귀에서 나오는 물을 닦아주었다. 그 생활은 몇 년을 걸쳐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낫지 않으면 어쩌지? 병원은 가기 싫은데.’ 먹먹하게 들리지 않는 귀를 잡고서 미간만 찌푸렸다. 귀를 한번 만지기 시작하니 면봉에서 두루마리 휴지로, 나중에 천으로 닦아도 베개 아래를 적셨다. 약국에서 알코올솜도 준비했다. 소독을 하면 뇌신경까지 감염되지 않을 거 같았다. 낮에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함께 하는 슈퍼 마법사가 되어야 하니까 아프면 안 됐다. 밤만 되면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Die Verwandlung)》을 떠올리며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처럼 해충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 다행히 난 이미 성충을 거쳐서 변신능력이 사라져 있었다. 땅을 세 번 치고 돌아봐도 변신제로. 카프카의 우울은 전염이 안 됐다.


그래서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았다. 그렇게 살고 보니 시간도 많이 흘렀고 우울은 어느새 저 강 너머에 있다. ‘언제 우린 이별을 했지?’ 귀도 건조하다. 지금은 가끔씩 간지러운 거 빼고 귀에선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난다. 감정을 쏟는 것도 괜찮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괜찮다. 지금 보니 다 괜찮다. 살아만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SNOR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