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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CANZONIERE, PETRARCA

《칸초니에레, 페트라르카》 줄기찬 시(詩)란 사랑의 매질

by CHRIS
Francesco Petrarca by Andrea del castagno


시는 항상 삶의 편에서 노래한다.
사막에서의 물 한 방울이자, 무한 무게를 띠며,
난관을 벗어날 수 있게 만든다.
<주세페 웅가레티 Giuseppe Ungaretti, 페트라르카의 시를 말하며>



어느 소설가가 그랬다.


“사랑, 이 말을 하고 난 다음에는 머릿속이 백지장으로 변한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40년간 한 여인에 대한 사랑만을 줄기차게 노래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그의 정제된 소네트에선 온통 라우라에 대한 물음뿐이다. 첫눈에 반한 젊은 사랑을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에도 품고 있었다니, 아름다운 미로에 빠져든 남자의 가슴엔 정녕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인가?

사랑스러운 이여!

육체적인 사랑은 강렬하다.

그러나 입술만이 아닌 손으로, 머리로, 혈관으로,

심장으로 써 내려간 사랑은 더욱 강렬하다.

시간의 터널을 지나

현재의 재난까지 들쑤시지 않는가.

7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정시, 그 거대한 문을 열었던 페트라르카의 음성을 들으며 시는 한 마디로 한탄이라고 생각했다. 운율만 정리한 길고 긴 한숨이다. 그림을 그리던, 사진을 찍던, 노래를 부르던, 작중화자에 의해 피사체는 감질나게 변한다. 냉정한 화덕이 되기도 하고 뜨거운 얼음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놓인 것은 보는 자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보는 이의 눈에 비친 세계, 그리고 사랑. 그의 자조 어린 시를 읽다 보면 ‘쓴다는 것은 별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위대한 이를 몰라봐서가 아니라 사람에게는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지닌 저마다의 펜이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혀끝에 담긴 것이 어떤 맛을 내든 간에 펜대를 유연하게 휘두르는 자가 있으면 세상은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겠지만 주어진 이름이 그렇게 간단하고 허망한 부름이라면 차라리 사랑하는 이의 입을 통해서 가치가 주어지는 길을 택하고 싶다.

정리를 그만두려고 하다가도 심장 박동이 혈관을 지속적으로 울리고 소음을 참지 못한 핏줄이 살을 뚫어버리는 조급증을 참을 수 없다. 한바탕의 욕지거리로 시원스럽게 샤워를 하고 나면 미안한 삶의 옥죄임 때문에 다시 음악을 들어야 하고 글을 읽어야 하고 그림을 보게 되는 것처럼, 자신의 글이 너무 부끄럽고 산만하다고 자평한 페트라르카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자비를 표한다. 사랑에 화살촉이 뭉툭하게 매달려있다면 심장이 감지하지 못한 습격은 태만한 미덕을 벗겨버리겠지.

구슬픈 사지에 쓰디쓴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찬 바람이 분다.
나를 아직도 알아보지 못한 그대...

이것이 한 달 전부터 칸초니에레 Il Canzoniere를 통해 한 남자의 안타까운 근심과 호소를 듣다가 급박하게 숨을 헐떡였던 사랑의 전말이었다. 평생을 희구하는 명예와 금발의 열정은 어둠이 내려앉으면 묻힐 그림자라는 것을, 죽고 난 뒤 남는 것은 섬광처럼 두 눈과 얄팍한 피부를 공격했던 가볍지 않은 사랑의 매질이기에 사람들은 사랑이란 사슬에 목을 매는 것인가. 나는 사랑을 짜게 된다면 매듭을 짓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동안에 그대가 나의 숨을 거둬가지 않도록 언제나 매듭의 코를 빠뜨려놓고서 그대의 사랑만을 엮을 것이다.

계관시인의 머리엔 단지 월계수의 영예만이 올려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심장을 조이고 미치게 했던 절절한 고통이 숨어있었다. 밤낮으로 한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치유할 수 없었던 두 눈에 바닷물을 집어넣는 찬미자. 그는 진정 돌아버린 것일까? 그런데 삶에 지쳐도 라우라를 사랑하는 건 지치지 않는다는 그의 절규가 왜 진실하게 들릴까? 차라리 힘겹다면 힘겹다고 솔직하게 말한 그가 좋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이 얼굴이 그대를 향해 흘리는 눈물 때문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면 겨울에는 뜨겁고 여름에는 냉해질 수 있으니까. 한순간 산들바람이 되었다가 촛불 위에 올려진 촛농으로 변해버렸다고 해도.


침대 위에서 쓰디쓴 노래를 부르는 새들은
귀향할 배를 타지 않는다
멸시의 창 끝이 위장을 찌르더라도
고통이 달다고 말한다
피조물이 남긴 눈시울의 고운 말씨는
삶의 연극을 끝내라고 명하고선
하늘의 별이 되도록 경쾌한 출발을 신고한다

거리의 눈빛이 꺼져갈 무렵
고뇌의 강물이 창문으로 밀려온다
꽃 따는 처녀와 휴식을 바라던 청년은
황무지에서 다시 사랑에 빠져가네
진실하게 고백하지 못했던 언어를

푸른 구릉지 위에다 쏟으며
누구의 재인지도 모를 뼛가루를 뿌리고

하얀 슬픔을 태우려니

사랑은 그런 것임을, 사랑은 그랬던 것임을,

그때서야 우리는 알게 될런가


2005. 2. 13. SUNDAY




지난 시간과 함께 한 글들을 돌아보면 자박한 말들 속에 스쳐간 사람들이 누워있다. 아직 남아있는 사람도 새롭게 다가온 사람도 이미 떠나간 사람도 어느 순간 잊혀진 사람도 있다. 사람은 달리 말하면 사랑으로 바꿔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서 사랑은 반드시 당신의 뒤를 돌아보게 하고 매몰차게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지금에 우두커니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삶은 야속하게 달아나지만 결코 멈추는 법이 없고, 우리는 기필코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급작스러운 방문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 모두 당신에게 고통을 주겠지만 그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연민과 평정심이 없다면 현재를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지속과 정지의 선택 중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면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항구 앞 등대의 불빛이 꺼지면 방랑의 여행은 종료된다. 부서진 키를 내려놓고 하얀 천이 깔린 바닥에 천천히 등을 기댈 시간이 다가온다. 그 어떤 시대의 사람들보다 길게 살고 있는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과 현재의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평생을 이룰 수 없던 사랑에 몸 바쳤던 위대한 시인도 한순간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평생을 노래했던 새도 잠이 든다. 황혼의 어두움이 내려앉는다.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편안하게 몸을 누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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