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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LOVE STRANGERS

FASHION, 패션의 의미

by CHRIS

2017년 한 여름 대구,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 매장 앞에서 일주일간 팝업스토어(POP-UP STORE)를 제안받고 망설였다. 서울에서 족히 세 시간 넘는 원거리인 데다가 전시를 준비하려면 두 세 차례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했다. '소니아 리키엘' 발병을 앓았던 십 대의 한 조각을 건드린 그녀의 이름을 보고선 그 앞에서 한번 해보자고 결정했다. 2016년 작고한 소니아 리키엘의 부재에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나 보다.


1990년대 패션잡지 《보그 VOGUE》와 《엘르 ELLE》를 보며 한국과는 다른 육체의 선과 동물적인 느낌에 몰두하던 당시, 문화적인 것과 패션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즐겨보던 영화 속 의상들은 당대의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조합품일 때가 많았다. 컨템포러리 화가나 포스트 모던 작가들이 즐겨 입던 옷들도 최고의 디자이너 작품이었다. 세상살이가 비좁았던 시절, 화려한 날개를 가진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소니아 리키엘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 우리나라에 고급브랜드로 인식되었다. 당시의 부띠끄 붐에 편승하여 아동복과 세컨드 라인을 둘 정도로 확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부드러운 저지와 니트만으로 감싸는 세상은 찢어지고 반항하는 자유로운 청춘들에게 내구성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파킨슨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프렌치 시크(FRENCH CHIC)는 서서히 기억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서울의 백화점에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2017년에 소니아 리키엘은 축소되는 분위기였다.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디자이너와 달리 대구에서 아직 그녀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가 살아있다니 말이다. 전시를 하면서 손님들이 적은 백화점 오픈 때나 문을 닫을 무렵, 사각형의 매장 속에서 소니아의 흔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우리의 이름은 언제까지 불려질까.


그녀의 사망 이후 브랜드는 쇠락을 거듭했고 2018년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2019년 여름, 대구점에서의 재요청으로 마지막 전시를 했을 때 소니아 리키엘의 브랜드 매니저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쪽 알아보려고요."

- 그래도 여긴 괜찮았는데 말이에요.

"그렇죠. 이런 느낌 다시 찾아봐야 할 거 같아요."


모든 것은 사라진다. 다만 정리는 존재의 소멸 뒤에 조금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욕망의 사슬 : 모호한 몸짓이 부르는 비밀한 언약

"말을 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수수께끼가 늘어간다."

Et je la voudrais nue, 소니아 리키엘 Sonia Rykiel》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혈질로 빚어진 빨간 머리 암고양이 소니아 리키엘, 그녀를 알게 된 건 1992년 한국판 엘르 ELLE》의 창간지에서였다. 방종하고 여유로운 몸짓을 지닌 슬라브 혈통의 프랑스 여인이 만든 슬림한 스웨터는 아이를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끊임없는 찬사를 쏟아냈다. 타이트한 탄성사의 조합으로 옷은 입고 있지만 흡사 벗은 듯한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녀의 감수성에 추종자들은 이중적이고 은밀한 향기라며 찬사를 보냈다. 샤넬 부띠끄를 장악한 칼 라거펠트도 옷을 매만지던 손을 그녀의 불타는 머리칼로 향했고, 세계 유수의 포토그래퍼도 나른한 주근깨가 뒤덮인 여인을 담는데 바쁜 손을 놀리곤 했다. 그녀의 옷은 보는 자체로도 입기에 작다는 느낌이 크다. 마른 여성을 위한 일자형의 코바늘로 이어진 바늘땀 없는 니트웨어를 보고 있으면 수축과 팽창 속에서 생명(生)을 키우는 캥거루가 연상되곤 한다. 패션에 입문한 동기가 그토록 신비감을 느끼는 아이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옷 만들기라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절, 소니아 리키엘에 대한 감상을 돌이켜보니 나는 주변인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소니아 리키엘을 보면 삐쩍 마른 땅콩이 생각났다. 촘촘한 니트사에 둘러싸인 붉은 조각 땅콩.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막 같은 코쿤(COCOON)을 만들어 낸 그녀는 안전하고 보호받는 여인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붉은 거미처럼 보호실을 자아내는 디자이너의 삶이나 생각을 찾아보면 그 안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소니아 리키엘의 글이나 패션이나 사는 방식이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들에는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냥 그녀의 한마디에 공감했다.


"말을 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수수께끼가 늘어간다."


말처럼 이상한 것이 어디 있을까? 발 없는 말. 잘 쓸 수 없는 말. 말 없는 말. 모두의 입을 다물어버릴 만큼 열렬한 추종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허물을 벗고서 바닥으로 꺼진 심연의 소리가 수면 위로 울렸으면 좋겠다. 자유분방한 관심을 터뜨리며 알 수 없는 세계로 둘러싸인 비밀의 공간에서 차마 삼킬 수 없는 감정의 위액을 쏟아야겠다. 붉은 암고양이보다 더 은밀하고 매력적인 검은 고양이, 에드가 엘런 포(Edga Allen Poe)가 말한 것처럼 숭고한 원천의 하나인 "모호함(OBSCURITY)"에서 나를 말해야겠다.

2004. 11. 19. FRIDAY




Only Love Strangers
[TUESDAY, 只爱陌生人] 长春. 2008. 9. 1. PHOTOGRAPH by CHRIS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밤, 시공을 뛰어넘은 검푸른 여행자처럼 장춘의 거리를 헤매었다. 까만 허공에다 살며시 입맞춤을 하고 밤바람을 마셨다. 삭막한 늦여름 기운이 맴도는 도로 한 귀퉁이에서 왕페이(王菲)의 노래와 같은 [只爱陌生人 Only Love Strangers], 포스터 속의 그녀가 손짓을 했다. 모르는 너와의 만남은 화요일이었을까.


상처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 것이며

그날의 일들에 대해 무슨 소문이 필요할 것인가.

믿을 것이란 당신이 전해주는 체온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네.


아무런 말도 이해도 필요 없는 시간이 흘러간다.


10년 전의 나, 그리고 또 10년 전의 나, 거기서 다시 또다시 10년 전의 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처럼 나는 뒤로 걷다가 너는 앞을 걷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랑할 시간에 만날 것이다. 다만, 정말 찰나여서 아쉬운 회한이 흐른다. 이전의 열망을 응시하면 낯선 타인을 만나는 느낌이다. 그때의 너도 지금의 나를 보면 낯설게 느끼겠지. 조디 포스터와 데니스 호퍼가 주연한 영화 <뒤로 가는 남과 여 The Rules of Attraction>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Passion is hard to conceal. Protect me from what I want."


숨어있는 가운데서도 채화된 열정은 숨기기 어렵다. 당신에게 남긴 나의 흔적은 어떤 식으로도 표가 날 것이다. 가슴속에 깊이 숨겨둔 그 어느 날 사랑의 기억처럼, 그렇게.

2013. 7. 13. SATURDAY





패션디자인을 시작했을 땐 이 세계에 굉장히 색다른 것이 있을 줄 알고 문을 두드렸다. 근데 콧방귀 뀌지 않으면 다행인 게 참 별게 없었다. 패션의 경향이라는 것도 순환적으로 몇 개의 포인트만 집어넣어 달라져 보이게 했을 뿐, 실제로는 평상과 같은 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엇인들 아니겠는가. 순환기적 구조로 돌아가는 이 사회에선 끈질긴 집념과 굳은 심지보단, 혹은 굉장한 창의력보단, 단단한 동전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 실망스러운 사회에서 뭔가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최소한 나 자신에게 쓰레기로 치부되지 않을 그런 의미 있는 생산을 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미지의 것에 매료되지 않던가. 알 수 없는 열정 속으로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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