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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by CHRIS

사람마다 독서 취향이 있겠지만 대학 졸업 때 총장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스티브 커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던지, 또 누가 주었는지 모를 홍정욱의 7막 7장》이라던지, 어느 경영인 모임에서 받은 어느 창업자의 OO》와 같은 성공담이나 자기 개발서는 목차만 읽더라도 어찌나 눈길이 활자 사이를 비켜나가는지 하품을 하다가 딱 덮어버리곤 한다. 우회전과 좌회전, 직진과 유턴이 일방형인 내비게이션형 문장은 속독으로도 읽을 수 없게 생각의 완주를 방해하는 요소 중에 하나이다. 외국어 공부도 할 겸 원서로 읽으면 집중하지 않을까 해서 천천히 읽어봐도 '그래서?', '음.', '흠!' 속내는 시큰둥한 반응이니 걸어보지 못한 타인의 길에 공감이 안 되는 유전자를 타고났나 보다.


제품을 출시하거나 노래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시나리오를 짓거나 행사를 진행할 때 사물의 형상뿐만 아니라 행동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타인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제1순위는 제목(TITLE) 짓기이다. 제목은 존재를 알리는 표식이자 타인을 초대한 목적이면서 그 의미를 담고 있다. 5년 전, 아는 기자가 모 디자인 기획사 대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 제목이 만들어진 비화 맛깔나게 설명한 부분이 기억난다.


원래의 이 책의 제목은 《WHALE DONE》이었다. 'Well done!'을 살짝 굴린 느낌이지만 《고래, 잘했어》로 직역하기엔 임팩트가 약해서 고민하던 차에 책 안에 인용된 범고래 샴의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책 제목을 변경하기로 한다. '먼저 범고래를 훈련할 때 조련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고래가 행동하면 '잘했다'는 의미로 먹이를 준다. 보상은 포옹이나 머리 쓰다듬기, 다른 범고래와의 교감, 야외에서의 유영으로 다양화한다. 길들여진 범고래는 조련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난도의 회전돌기와 비틀기, 점프 등 다양한 재주를 부린다.' 이 고래반응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 출판사는 책 제목을 바꿨고 그게 소위 대박이 터졌다는 거다. 너도 나도 칭찬을 권장하는 광풍이 사회 전반에 불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이 책 이후, 제목을 직역하지 않고 특이하게 제목 짓기가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칭찬에 야박하고 타인과의 작업에서 엄청난 레벨업을 요구한다는 평가를 듣는 나는 타인에게 "잘했네!". "좋네!", "굿!" 이렇게 말한 뒤 "그래서?"를 덧붙인다. 그래서, 상대에겐 혀끝에 맴도는 짧은 감탄사가 칭찬으로 들리지 않고 "사람이 참 시니컬한 거 아니냐"는 날카로운 응답으로 돌아온다. 하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나와서 한국에서 한바탕 칭찬 열풍이 불었을 때 지인들이 말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거 몰라? 하물며 동물도 그런데 사람한테 왜 그리 무미건조해?"


귓전을 스치는 타박에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던 나의 반응은 이랬다.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칭찬은 정말 고래를 춤추게 하였을까? 고래의 마음을 읽지 못해서 이건 넘어가야겠다. 그러나 내가 고래라면 소금을 섞은 콘크리트 웅덩이 밖을 너머 드넓은 심연에서 뛰놀고 싶어 했을 거 같다. 사자들이 동물원 철창에서 오랫동안 키워지면 스스로 번식도 거부하고 자신의 꼬리도 잘라먹고 한다는데, 범고래라고 다르지 않다. 자신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된 범고래는 '칭찬'하는 조련사의 손을 물지 못해 오늘의 생존으로 먹이를 받아먹었을 것이다. 갇힌 곳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행동할 수 없는 조건의 생물에게 기대감을 부여하고 그 목표치에 다다르면 보상하는 일련의 길들여진 행동을 '칭찬'이라고 부른다면 '파블로프의 개'가 강요당했던 조건반사 실험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의 주체로서 만족하는 기준은 외부와 내부의 시각에서 합치되기 어렵다. 관객을 위한 연극적인 성취감을 형성하기 위해 내부의 본성을 바꾸는 조련방식이 칭찬이라면 과감히 거부하기를 선택하겠다.


난 타이틀에 무관심한 듯하나 작업하는 순간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제목과 합치되지 않는 모습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타이틀이 하나의 대상 위에 얹어있는 왕관이라고 가정하면, 타이틀을 얻는 것도 타이틀을 내려놓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Peace: Dream of the Whale] 2024. 1. 31. OPEN-AI DALLE·3 Prompt Design by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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