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을 닫고 나오던 어느 날이었다.
분명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 조직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공허함이 남았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이 있는데도
그것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과거의 이력으로만 남아 있는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2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질문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버티고 있는 것뿐인가.
돌이켜보면
이 감정은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직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비슷한 지점에 서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던 시기,
속도를 조절해야 했던 시기,
그리고 예기치 못한 변수 앞에서
잠시 멈춰 서야 했던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며
나는 한 가지를 인정하게 되었다.
버텨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자산이라는 사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자산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던 한 사람을 다시 떠올렸다.
박진영,
그리고 JYP라는 방식이다.
이 글은 어떤 위기 속에서 우연히 붙잡은 해답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보며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기준을
비로소 꺼내 정리해 보는 기록에 가깝다.
우리는 결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과를 쫓는다.
나 역시 그랬다.
성과, 평가, 인정.
눈에 보이는 결과를 기준으로
나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과는 생각보다 쉽게 흔들렸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끼어들면
결과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결과는 통제하기 어렵지만,
과정은 다르다는 것을.
JYP를 보며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결과보다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나는 지금,
결과를 쫓고 있는가
아니면 과정을 설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나 개인을 넘어
조직 안의 리더와 구성원 모두에게
유효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는
‘어떤 자리인가’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직함이 곧 영향력이고,
그 영향력이 곧 나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믿음은 점점 흔들렸다.
자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 순간 남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JYP는
가수이자, 프로듀서이자, 창업가다.
그는 특정한 자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업’을 계속 확장해 왔다.
이 지점에서 나는
조금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마주했다.
나는 지금,
자리로 설명되는 사람인가
아니면 일로 증명되는 사람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조직 안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겪었던 많은 일들은
그저 ‘지나간 경험’으로 남아 있었다.
바빴고, 치열했고, 억울했고,
그때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다시 꺼내보면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에 가까웠다.
JYP의 방식은 달랐다.
그는 실패를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반드시 분석하고, 구조로 만들고,
다음 단계에 다시 사용했다.
그 차이가
결국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정말 자산으로 만들었는가.
아니면 그저 버텨낸 시간으로만 남겨두었는가.
이 질문은
나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관계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계가 기준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누구와 가까운가,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이 질문들 속에서
본질적인 기준은 점점 흐려진다.
JYP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하다.
진실, 성실, 겸손.
이 세 가지는
성과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더 분명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관계를 넓히기보다
기준을 분명히 하는 것.
그리고 이 질문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조직 안의 모든 구성원과 리더에게
함께 던져보고 싶다.
우리는 지금,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여러 생각을 거쳐도
결국 남는 것은 단순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JYP의 루틴은 유명하다.
철저한 자기 관리, 반복되는 기본기 훈련.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졌다.
‘저건 저 사람이니까 가능한 거 아닌가.’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반복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도
작은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책상을 정리하는 짧은 시간.
그리고 조용히 앉아
읽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반복일 수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그 10분, 20분의 반복이
하루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변화는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에서 완성된다는 것.
그리고 이 질문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남는다.
나는 지금,
어떤 루틴을 반복하고 있는가.
오랜 시간 조직에 있다는 것은
단순한 경력이 아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선택과 판단,
그리고 책임이 쌓여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질문이 필요해진다.
어떻게 더 버틸 것인가가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JYP를 보며 느낀 것은
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구조로 만들고
그 구조를 삶으로 증명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조직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23년을 지나온 지금,
나는 더 이상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성된 사람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같은 방식으로 반복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조금 더 의식적으로
나의 방식을 바꿔가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용히 건네고 싶다.
나는 지금,
내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을 오늘 하루 버티게 한 루틴은 무엇인가요?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반복이, 이미 당신의 다음 단계를 만들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