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조직을 살리는 기준의 힘. 거스 히딩크에게 배운다

by 오피스 사가Saga

1. 그 밤의 함성을 기억하는가


2026년이다.
또다시 월드컵을 이야기하는 시기다.

하지만 지금 꺼내려는 이야기는
2002년의 ‘추억’이 아니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오 필승 코리아”
붉은 티셔츠로 뒤덮였던 거리
밤을 새워 외치던 함성

그 중심에는
거스 히딩크가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4강.

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결과가 아니다.

그 과정이다.

황선홍의 선제골

박지성 결승골

설기현의 동점골

안정환의 골든골
이운재의 선방 등

지금은 전설이지만
당시 이들은 세계 최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포르투갈을 이기고
이탈리아를 꺾고
스페인을 넘었다.

왜 가능했을까.

나는 그 답을
지금의 작은 조직에서 찾고 있다.

이 글은 축구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바꾸지 못하는 조직이, 어떻게 결과를 바꾸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2. 작은 조직의 리더가 매일 마주하는 장면


대기업은 사람을 고른다.
하지만 작은 조직은 사람을 안고 간다.

완성된 인재가 아니라
가능성만 있는 사람들.

나는 이들을
‘익지 않은 벼’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벼들이 아직 익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방향이 없으면 흔들리고
기준이 없으면 눈치를 본다.

그래서 조직은 이렇게 흘러간다.

관계가 기준을 이기고
눈치가 성과를 이기고
소통이 아니라 정치가 흐른다

리더는 결국 이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이 질문에
가장 명확하게 답했던 사람이
거스 히딩크다.



3. 그는 사람을 바꾸지 않았다, ‘판’을 바꿨다


히딩크는 선수들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선수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시작이
호칭이었다.


4. 호칭을 없앤 이유: 존중이 아니라 ‘통신’이었다


그는 경기장에서 말했다.

“형이라고 부르지 마라.
이름만 불러라.”

“명보!”
“선홍!”

이건 예의가 아니다.
속도다.

0.1초 안에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위계는 통신을 끊는다.

더 중요한 건
심리적 위계였다.

후배가 선배에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

그걸 그는 깨버렸다.

이건 수평 문화가 아니다.
성과를 위한 설계다.


5. 식탁을 바꾼 이유: 분위기가 아니라 ‘흐름’이었다


히딩크는 식사 자리도 바꿨다.

선임끼리 앉지 못하게 했다.
선후배를 섞었다.

그리고
후배가 선배에게 물을 떠다 주는 것을 못하게 했고

각자 자기 물은 스스로 챙기게 했다.

이건 배려가 아니다.

구조다.

밥상에서 말을 못 하는 관계는
현장에서 절대 말을 못 한다.

식탁은
가장 낮은 강도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여기서 막히면
현장에서는 반드시 터진다.

2026년의 조직은 어떤가.

슬랙(실시간 채팅과 빠른 피드백)을 쓰고
노션(체계적인 문서화와 정보공유)을 쓰고
회의를 늘린다.

그런데도 소통이 안 된다.

이유는 하나다.

판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셔틀런: 모두를 납득시키는 단 하나의 기준


히딩크는 모든 선수를 줄 세웠다.

셔틀런.

( '왕복 오래 달리기'정해진 두 지점 사이를 신호음에 맞춰 반복해서 달리는 운동)

이름값도
경력도
나이도 없다

오직 기록.

이 기준 하나로 팀을 다시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익지 않은 벼’였던 선수들이
이 기준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조직은 두 갈래로 나뉜다.

기준을 따라 더 성장하는 사람과
기준 위에 올라서려는 사람이 생긴다.

기준이 계속 유지되면
조직은 강해진다.

하지만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관계가 기준이 되고
정치가 시작된다.



7. 황선홍: 전설을 다시 경쟁자로 만든 순간


황선홍은
당시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하지만 히딩크는
그를 벤치에 앉혔다.

이유는 단 하나.

“지금 몸 상태로는 안 된다.”

부상
체력 저하
셔틀런 기준 미달

명성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그는 전설을 버린 것이 아니다.

전설을 다시 경쟁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

폴란드전 선제골.

이 장면은 말해준다.

기준은 사람을 꺾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우는 것이다.



8. 기준이 사라진 조직, 2024년에 벌어진 일


여기까지는
기준이 작동하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기준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그 장면을 봤다.

2024년 아시안컵.

4강 직전 저녁 식사 자리.

한쪽은 식사를 하고 있었고,
주장 손흥민은
식사 후 팀 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강인을 포함한 일부 선수들은
탁구를 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식사라는 팀의 루틴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기준과 자유의 충돌이다.

그리고 다음날.

요르단과의 4강전.

결과는 참담했다.

유효 슈팅 0개
0-2 패배

패스 연결은 끊겼고
공격 흐름은 사라졌으며
팀은 하나로 움직이지 않았다

주장은 부상을 입었고
팀은 심리적으로 붕괴됐다

이건 패배가 아니다.

‘원팀’의 붕괴다.


당시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은 개입하지 않았다.

갈등은 방치되었고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 결과

자유는 방임이 되었고
팀은 무너졌다

이건 세대 갈등이 아니다.

기준의 부재다.



9. ‘익지 않은 벼’의 두 번째 얼굴


나는 익지 않는 벼로 조직원을 설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처음의 ‘익지 않은 벼’는
가능성이었다.

방향만 주면
성장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기준 위에서 성과를 경험한 순간,
일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과를 조금 내고
인정을 조금 받으면
그 기준을 지키는 대신
넘어서려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두 번째 ‘익지 않은 벼’다.

겉으로는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준을 흔드는 존재.

이들은 더 이상 미숙한 인재가 아니다.

조직의 질서를 흔들 수 있는 변수다.

리더는 이 순간 선택해야 한다.

참을 것인가
개입할 것인가

히딩크는 명확했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10. 우리가 매일 보는 장면


이 장면은
축구 이야기만이 아니다.

공공기관에서도 반복된다.

의도적인 제보와 타깃 감사
징계
내부 갈등

“왜 저 사람은 안 건드리지?”
“결국 줄 잘 서는 사람이 남는다”

이 순간 조직은 무너진다.

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누군가 채운다.

그들은 보통
약간의 능력을 과시하면서
조직을 흔드는 사람들이다.

기준을 선택적으로 따르고
관계를 무기화하고
리더의 침묵을 확인한다.

리더가 개입하지 않으면
그들이 기준이 된다.



11. 독사형 인재가 리더를 시험하는 패턴


조직이 흔들릴 때
반드시 등장하는 유형이 있다.

겉으로는 성과를 내지만
속으로는 조직을 무너뜨리는 사람.

이들을 흔히
“독사형 인재”라고 부른다.

이들의 특징은 명확하다.

첫째, 기준을 선택적으로 따른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규칙을 지킨다.

둘째, 관계를 무기화한다.
성과보다 ‘누구와 가까운가’를 활용한다.

셋째, 조직의 불만을 증폭시킨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불만을 연결한다.

넷째, 리더의 결단을 시험한다.
“어차피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확신이 있다.

이들이 위험한 이유는 단 하나다.

리더가 침묵하면
이들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조직은 끝난다.

히딩크가 위대했던 이유는
전술이 아니라 이것이다.

누가 팀을 흔드는지 알고 있었고,
그 순간 개입했다는 것.



12. 리더는 결국 무엇을 선택하는 사람인가


리더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조직을 살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둘은 종종 충돌한다

히딩크는
사람보다 기준을 선택했다

그래서
사람을 살렸다

조직이 무너지는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회의 시간 하나
식사 자리 하나
작은 약속 하나

그게 무너질 때
조직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리더는 그 순간을 안다

지금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많은 경우 지나친다

괜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괜히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한 번
두 번
넘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조직은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리더십은
능력이 아니라 선택이다

지금
기준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

그 선택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이루어지고

결과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작가의 이전글23년을 버틴 내가 JYP에게 '다음 단계'를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