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에서 사람답게 살아남는 법 - 네 번째 이야기
나는 23년 동안 조직 안에서 거의 모든 자리를 경험했다.
막내로 시작해 팀의 허리 역할도 해 보았고, 부서장 자리까지 맡아 일했다.
경영진에 속했던 적은 없지만,
현장에서 조직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아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진실을 기준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때로 오해를 낳는다.
하지만 오해는 대화로 풀린다.
그러나 거짓은 다르다.
거짓은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조직에서 거짓은 실수가 아니라, 암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조직에서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다.
특히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에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 질문은 더욱 깊어진다.
왜 거짓말을 할까.
왜 사실보다 해석이 먼저 퍼질까.
속 시원한 답을 알지 못한 채,
나의 의문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오죽하면 나는 지금
내 경험을 비추어 이런 글을 쓰고 있겠는가.
조직이 무너질 때는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 내부에서 시작된다.
이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 있다.
동실조과(同室操戈).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창을 겨누는 상황이다.
편 가르기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사실을 보지 않는다.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누가 우리 편인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조직은 일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경계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충신 굴원(屈原)은
나라를 지키려다 모함을 받았다.
그의 충언은 음모로 해석되었고,
그의 진심은 정치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그는 멱라수에 몸을 던진다.
이 이야기는 수천 년 전 이야기지만
오늘의 조직에서도 반복된다.
진실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만,
거짓은 소문만으로도 충분히 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무능한 사람이 권력을 잡을 때가 아니라
거짓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이다.
이 현상은 과거의 역사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 Enron이
무너질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엔론은 극단적인 상대평가 제도를 운영했다.
매년 일정 비율의 직원을 반드시 퇴출시키는 구조였다.
그 결과 직원들은 협력자가 아니라
생존 경쟁자가 되었다.
정보 공유는 사라졌고,
문제 제기는 위험한 행동이 되었다.
위험을 경고했던 임원 Sherron Watkins조차
조직 안에서 고립되었다.
결국 엔론은 외부 공격이 아니라
내부 신뢰 붕괴 속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동실조과(同室操戈)라는 말이
현대 기업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나는 뼈아픈 상처를 입고 있다.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조직은 언제나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인사권, 평가권, 감사권.
이 권한들은 법을 위반하지 않더라도
개인을 충분히 흔들 수 있는 힘이 된다.
때로는 사실 여부보다
“조직이 무엇을 편하게 여기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기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억울함을 느끼는 개인이
조직과 다투는 일은 그래서 더욱 고통스럽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조직의 건강성이 시험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아직
조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는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일은 결국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진실은 느리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거짓은 빠르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묵묵히 내 일을 하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질문을 붙잡고
글을 써 내려갈 것이다.
“조직에서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지금 내가 버티는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