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는 왜
서로 무너지길 바랄까?

- '나의 아저씨'와 주유(周瑜)가 말하는 인간의 본능

by 오피스 사가Saga

나이는 상처를 막아주지 않는다


23년 직장 생활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직장에서 상처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위나 직급, 나이가 높아질수록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은 착각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는
관계와 평가 속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 사실을 몸으로 겪고 있다.

사실이 아닌 말과 모함 속에서
억울하게 보직해임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자연히 드러날 것이라 믿었지만
조직에서 시간은 진실의 편이 아니라
권력의 편일 때가 더 많다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묻는다.

직장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서로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 — 직장의 가장 잔인한 진실


그 질문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장면을
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보았다.


지안과 동훈이 저녁자리에서 술잔을 마주하며 이야기한다.


“사람들이요…
서로 불쌍하게 여기면 좋은데,
서로 잘못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그럼 우리 서로 잘못되기를 빌어줄까요?
남이 잘되길 바라는 사람들은 다 안 풀리는데,
남 잘못되길 바라는 사람들은 다 잘 풀리더라고.”


이 장면이 가슴을 치는 이유는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직장은 때로
누군가의 성공보다
누군가의 실패가 더 큰 안도감을 주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일을 잘하려 하기보다
사람을 제거하려 한다.

능력으로 경쟁하지 않고,
소문과 고립, 인사권으로 상대를 무너뜨린다.

현실의 조직에서도
이 모습은 낯설지 않다.



주유(周瑜)가 보여준 비교의 함정


삼국지 속 주유(周瑜)

오나라의 대도독,

손권을 보좌하던 최고 사령관이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한
당대 최고의 전략가였다.

젊은 나이에 명성, 권력, 능력을 모두 갖춘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의 비극은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비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제갈량의 재능을 인정하기보다
그를 제거해야 할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고,
위험한 임무를 떠넘기거나 계략을 꾸미며
상대를 무너뜨리려 했다.

경쟁이 아니라
제거의 싸움으로 마음이 바뀐 순간부터
그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전해지는 탄식이 이를 상징한다.


“하늘이 나를 낳았으면서
어찌 또 제갈량을 낳았는가.”


그는 전쟁에서 패배해 죽은 것이 아니다.

비교와 집착, 분노 속에서
스스로 무너져 갔다..



결국 무너지는 것은 누구인가


주유(周瑜)의 삶이 말해주는 결론은 단순하다.

남을 무너뜨리려는 싸움은
대개 상대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무너뜨린다.


'나의 아저씨'의 결말도 동일하다.

지안과 동훈을 짓밟던 사람들은
권력은 잠시 가졌지만
결국 관계, 평판, 삶 모두가 파괴된다.

대표이사와 상무는
조직을 지키려 했던 것이 아니라
권력을 지키려 했고,
그 결과 스스로 만든 세계 속에서 파국을 맞는다.

반대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던 두 사람은
천천히 회복되고
마침내 각자의 삶을 다시 살아간다.

이 대비는 너무도 분명하다.

남을 모함하고 계략을 꾸미는 싸움은
상대를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구조다.



나는 아직도 답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직장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23년 동안 내가 겪은 것은
밝음보다 어두움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은
밝음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어두움에 익숙해지는 일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깨닫는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조직 속에서 마지막까지
사람으로 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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