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문과 의심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스스로 내치고 있지는 않는가
어느 조직에서나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그 사람 윗선에서 안 좋게 본다던데.”
“괜히 가까이하지 마.”
“요즘 말이 많아.”
누가 말했는지는 모른다.
근거도 없다.
하지만 분위기는 형성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곧 평가가 된다.
성과보다 평판이 먼저 돌고,
데이터보다 소문이 빠르다.
이때 조직은 묻지 않는다.
“사실인가?”가 아니라
“다들 그렇게 말하나?”를 묻는다.
여기서 말하는 ‘제갈량을 잃는다’는 것은,
조직에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던 사람을
소문과 의심으로 스스로 내치는 순간을 뜻한다.
제갈량은 특별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감당하지 못해 밀어내는 것이다.
많은 경영진이 착각한다.
“문제제기를 잘하는 사람이 많으면 조직이 건강해진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하다.
문제제기자와 해결책 제시자는 다르다.
대안 없는 비판은 피로를 쌓는다.
회의는 길어지고,
결정은 늦어지고,
실행은 멈춘다.
문제는 누구나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해결책을 구조로 만들고,
리스크를 계산하고,
실행 가능한 안으로 정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일수록 조용하다.
정치에 서툴고,
성과로 말한다.
그래서 소문에 가장 취약하다.
리더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을 강화하는 이야기만 모으는 순간,
조직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진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실력’보다 ‘평판’이 중요해진다.
이 모습은 경제학의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 악화가 양화를 구축함)과 닮아 있다.
정치에 능한 사람이
조용히 일하는 사람을 밀어낸다.
실력 있는 사람은
정치 싸움을 피한다.
그리고 떠난다.
남는 것은
소문을 잘 만드는 사람과
그 소문을 종합 판단이라 부르는 구조다.
이건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유비(劉備)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 초가집을 찾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그는 소문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제갈량은
전술가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었다.
행정을 정비하고, 병참을 안정시키고,
조직을 구조화했다.
반대로 조조(曹操)는
순욱(荀彧)을 잃는다.
순욱은 조조 정권의 명분과 인재 체계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의심이 개입되자
그는 점점 배제되었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군대는 남았지만
설계자는 사라졌다.
인재는 외부가 빼앗지 않는다.
내부의 의심이 밀어낸다.
전국책(戰國策)은 말한다.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伯樂)은 드물다.
많은 경영진은 말한다.
“우리 조직엔 천리마가 없다.”
그러나 천리마가 없는 것이 아니다.
키우지 않는 것이다.
실수를 학습으로 만들지 못하고,
소문을 검증하지 않고,
의심을 관리하지 못하는 조직에서는
백락이 사라진다.
그리고 백락이 사라진 조직은
제갈량을 모셔오지도 못하고
이미 있던 제갈량도 지켜내지 못한다.
당장 망하지 않는다.
실적은 유지된다.
보고서는 정리된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해결자가 줄고
비판자가 늘어난다.
의심이 한 번 개입되고,
소문이 한 번 판단을 대신하고,
핵심 인재가 한 명 떠나는 일이 반복되면
조직은 겉으로 멀쩡한 채
안에서부터 비어 간다.
문제는 한 번의 오판이 아니라
그 오판이 반복되는 구조다.
그리고 어느 날
시장이 한 번 흔들릴 때
버티지 못한다.
그때 묻는다.
“왜 이렇게 됐지?”
이미 오래전,
제갈량을 잃은 순간부터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조직은 사람을 직접 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가.
조직은 해결자를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문제제기자를 소비하고 있는가.
조직은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분위기를 관리하고 있는가.
제갈량은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소문이 더 빠를 뿐이다.
그리고 그 소문을
판단이라 착각하는 순간,
조직은 또 한 번
제갈량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