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생, 나의 아저씨에서 배우는 인테그리티
나는 사회생활을 대기업에서 시작했다. 3년을 근무했다.
그 이후 공공기관으로 옮겼고, 그 뒤로도 몇 차례 다른 공공기관을 경험했다.
경험한 대기업에서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없었을 수도 있지만)
연차가 생긴 이후부터 근무한 공공기관에서는 공통점이 하나를 보았다.
조직 안에는 언제나 정치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2~3년마다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왔다.
새로운 비전이 발표되고,
새로운 슬로건이 걸리고,
새로운 조직개편이 이뤄졌다.
그때마다 분위기는 바뀌었다.
사람들은 줄을 다시 섰고,
누군가는 가까워졌고,
누군가는 조용해졌다.
나는 여러 번 다른 리더십을 경험했다.
카리스마형도 있었고,
관료형도 있었고,
성과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무능력자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하나였다.
그 리더가 어떤 기준을 남겼는가.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 안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말하고 싶어서다.
리더십이 바뀌어도
기준이 남지 않으면
조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리더십은 카리스마가 아니다.
목소리가 크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리더십은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태도다.
인테그리티(Integrity) 역시 거창한 윤리가 아니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일관성,
판단 이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조직에 “이것이 우리의 기준이다”라고 분명히 말하는 용기.
판단은 있었는데
정리와 메시지가 없다면
구성원은 이렇게 배운다.
“힘이 기준보다 세다.”
그 조직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미생』은 대기업 종합상사를 배경으로 한다.
바둑기사 입단에 실패한 장그래가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한다.
그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다.
업무도 서툴고, 사람 관계도 어렵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늘 불안하다.
그를 이끄는 오상식 과장은
성과 압박 속에서도 팀원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무리한 윗선의 요구에 무조건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장그래는 임원이 되지 않았다.
대단한 출세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배웠다.
일이 힘들어도 기준을 지키는 태도,
사람을 도구처럼 쓰지 않는 리더십,
조직 안에서도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법.
그가 얻은 것은 직위가 아니라
기준이었다.
『나의 아저씨』의 배경은 건설회사다.
도준영은 회사의 전문경영인으로 대표이사다.
그는 인사권과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위협이 되는 박동훈을 제거하려 한다.
내부적으로는 편이 갈리고,
압박과 음해가 이어진다.
권력은 분명 그에게 있다.
직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쉽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뢰를 잃은 권력은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반대로 박동훈은
끝까지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억울함 속에서도 기준을 버리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권력은 잠시 강할 수 있다.
그러나 인테그리티(Integrity)가 없는 권력은
결국 무너진다.
나는 이 질문을 지금의 조직에서 던진다.
공식 조사 결과,
조직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판단이 있었고
명예훼손적 행동이 있었음도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사자는 여전히 경영진으로 남아 있다.
직위도 유지되고, 인사권도 그대로 행사한다.
직원들은 알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조직은 조용하다.
인사권을 의식해서인지,
이미 결론이 난 일이라 생각해서인지,
곧 경영진 교체 시기가 다가온다는 이유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여겨서인지.
이유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같다.
말하지 않는다.
다시 꺼내지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 반복 속에서
조직은 학습한다.
“버티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나는 이것이 가장 우려스럽다.
지금 나는 기준을 분명히 하자고 말하고 있다.
리더십은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다.
조직에 “이 선은 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역할이다.
인테그리티(Integrity)는
그 선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하는 태도다.
조용한 조직은 건강하지 않다.
무감각해진 조직은 더 위험하다.
우리는 아직 완생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필요하다.
능력 있는 리더가 아니라,
기준을 지키는 리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