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괜찮아
응답하라! 그땐 그랬지!
고등학교 시절, '빽 투 더 퓨처'라는 영화가 무척 인기가 있었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벌어지는 유쾌한 에피소드였는데, 지금 보면 어쩌면 CG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정말 엄청난 인기였습니다. 시리즈로도 3탄까지 나왔었죠! 제 친구 녀석은 이걸 5번이나 봤다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는 그 영화 속 발상은 즐거웠지만, 제가 직접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모든 걸 '처음부터'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게 싫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니... 이건 정말 아니야!" 싶었거든요. 그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그랬을까요? 영화도 3탄 정도 되니 영 시큰둥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나 돌아갈래!"... 과연 나는 몇 살로 돌아가고 싶을까요?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시큰둥했던 저였지만,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는 지금 보아도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설경구 배우가 기찻길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장면은 정말 압권이죠. 그 장면을 떠올리며 문득 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과연 몇 살로 돌아가고 싶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젊었을 때는 제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몰라 연애도 인간관계도 학생운동도 노동조합 활동도 무척 자충우돌하며 우왕좌왕하던 시기였거든요.
'박하사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문소리 배우가 죽기 전, 남편에게 설경구 배우를 마지막으로 찾는 모습입니다. 그 장면은 아직도 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왜? 나도ㆍㆍㆍㆍ
나의 그릇을 알아가는 좌충우돌
"20대에 혁명을 꿈꾸지 않으면 가슴(열정)이 없고, 40대가 되어도 혁명을 꿈꾸면 머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죠. 저도 20대 초반에 '혁명'이라는 말에 살짝 발가락 하나를 담갔었습니다. 30대엔 취업을 하고도 미련을 못 버리고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다가 직장에서 해임도 당했습니다.
40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저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부는 100여 명, 지방본부는 1000여 명, 그리고 철도노조 본조는 2만 5천 명의 규모였습니다. 지부, 지방본부, 본조 간부를 어쩌다 보니 맡게 되면서 저의 한계를 깨달았던 것이죠. 처음에는 너무 적은 인원이라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크고 넓은 조직으로 가면 저와 뜻이 맞고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죠. 하지만 40대 초반, 본조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 낯선 사람,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제가 낯설어하고 어색해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겁니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도 제 인간관계를 낯설어하는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죠. 그래서 그 이후로는 노조 상근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원 세 명 중 제가 반장이고, 두 명이 저와 함께 일하죠. 이게 딱 좋습니다. 제가 직접 움직이고 교감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4명 정도가 적당합니다. 5명만 되어도 버거워지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이렇게 그릇이 작은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 그릇에 맞게 살면 되는 것이니까요.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
누가 봐도 저는 육체노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몸입니다. 그리고 넓고 얕게 모르는 것 빼고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잘난 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서류를 만지고 머리를 쓰는 사무직이 어울린다고 저 스스로도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심지어 부모님께서도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너는 몸이 약해서 육체노동을 못하니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저는 육체노동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취미로 독서나 사색, 특기로 수다 떨기를 즐기면서, 직업은 몸으로 하는 일이 오히려 스트레스도 덜 받고 취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통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머리로 일하고 취미로 등산이나 골프 같은 것을 즐기지만, 저는 반대로 육체노동으로 직업을 삼고 취미 생활로 머리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세상일은 고사하고, 저 자신을 알아가는 데도 무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나마 죽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떨 때는 자신과 맞지 않는 취미와 직업을 남들 시선 의식해서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인간은 '좋아요!'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동물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뭐랄까요, 그것을 조그이나마 포기한 동물쯤 되는 걸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