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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리고 행복은 뇌의 생화학작용

평범한 일상과 중년 남자의 시크한 자뻑 행복론

by 자유로운영혼


1. 19년 만의 감격: 한화이글스 그리고 각기 다른 풍경

지난 10월 24일, 한화가 삼성과의 5차전 끝에 19년 만에 코리안 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도 딸도 아들도 한화 팬이지만, 이게 '열혈팬'이라기보다는 그냥 대전에 사는 사람이라면 보통 이 정도는 응원하지 싶다. 딸은 운 좋게 친구 덕분에 티켓팅에 성공해서 경기를 직관했다는데, 11대 2라는 큰 점수로 한화가 이기던 날이었다. 19년 만에 진출을 확정하는 날이라 그런지, 9회 초 마지막까지 관중들이 자리를 뜨지 않아서 딸도 겨우 막차를 타고 신탄진역에 밤 11시 5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신탄진역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갔더니, 딸은 한화 유니폼에 목도리까지 하고 우의를 든 채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아 집에 오는 내내 경기와 응원 이야기를 종알거렸다.


다음 날인 25일에는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군대 가기 전에는 웬만한 일 아니면 전화 한 통 없던 아들인데, 군대 가더니 휴대폰 받으면 나한테 전화하고 반납하기 전에도 꼭 한 번 더, 보통 하루에 두 번은 전화를 한다. 아들이 군대 가니 내가 더 좋은 것 같다. '효도받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어제는 전화가 왔는데, 짜증이 난다는 거다! 한화가 19년 만에 코리안 시리즈에 진출했는데 경기장에서 직접 보지 못하고 군대에서 TV로 봐야 한다는 게 신경질 난다는 것이다. 늘 군대 가서 중고등학교 때 남자 인원이 적어서 못 해봤던 축구나 농구, 풋살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던 아들이었는데. TV로 경기를 볼 수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하이라이트를 돌려볼 수도 있는데, 그것도 군대에서! 단지 직관을 못 한다는 게 그렇게 서운한 건지, 사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에게는 무한 공감을 표현해주려고 했다. 내가 진정성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아들이 19년 만에 온 기회를 직관하지 못한 서운함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들은 통화 마지막까지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2. 일상 속의 나: 감흥의 변화와 동생과의 차이

나는 넷플릭스가 나온 뒤로는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뭐, 그전에도 어울려서 가끔 가기도 했지만, 영화관에서 보나 커다란 TV 화면으로 보나, 넷플릭스에서 태블릿으로 보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집에서 태블릿으로 혼자 넷플릭스를 보다가 지루하거나 피곤하면 잠시 쉬고 다시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지난달에 동생과 유럽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도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냥 동생이랑 수다 떨고, 패키지 일정을 끝내고 저녁 9시쯤 숙소에서 호텔 주변을 산책하며 시골 맥주집에 들어간 일, 밤중에 뛰어다니다가 경찰에게 검문을 받고 여권이 없어서 10여 분 동안 손짓 발짓 해가며 해명해서 겨우 돌아온 일, 밤에 시골길을 걷다 길을 잘못 들어 가로등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늘을 봤는데 별이 쏟아져 내리는 듯하던 일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그걸 굳이 유럽까지 8시간 비행기 타고 비싼 돈을 주고 경험한다는 건 나에게는 이제 별로 와닿지 않는다. 유럽 자유여행을 세 번 하고 이번 패키지여행이 네 번째라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흥미가 떨어진다.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내 동생은 아직도 집에 서라운드 스피커가 연결된 대형 TV가 있는데도 혼자 영화관에 가서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며, 유럽 여행 내내 맥주와 커피 맛을 즐기고 호텔 테라스에 앉아서 풍경을 즐기는 '낭만파'다. 테슬라를 타고 휴대폰은 무조건 아이폰이어야 한다며 '폼생폼사'로 사는 편이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직장에 다니며 경제적 능력도 비슷하고, 직장 내 노조 일도 하는 등 정치 성향도 비슷하다. 환경 면에서는 별로 다른 게 없는데 개인 취향은 정반대다. 나는 아버지 유전자가 약간 많고, 동생은 어머니 유전자가 약간 많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유전자의 조그만 차이가 이토록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니, 의구심이 든다. 유전자의 힘은 생각보다 큰 것일까, 잘 모르겠다.


3. 유물론자의 살아기기 : 뇌를 해킹으로 찾는 차가운 행복과 작지만 소중한 설렘

인간은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며 영혼은 없고, 그래서 죽어서 영혼이 천국에 가고 안 가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죽음 또한 삶의 또 다른 형태라고 보기에 물질 보존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본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유물론자이다.


행복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뇌의 전기 신호에 의해 이루어지는 화학반응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그전에도 차가운 성격으로 감성보다는 이성이 지배하는 성향이었는데, 유발 하라리의 이 말에 설득되면서부터 마치 '냉혈한'이 된 듯하다. 그래서 내가 타고 다니는 모닝을 벤츠라고 뇌에 전기 신호를 보내고, 내가 살고 있는 월세 아파트가 '내 소유의 펜트하우스'라고 전기 신호를 보내고, 내가 사는 신탄진이 서울 강남이라고 전기 신호를 보내어 뇌를 속여서 행복감을 얻어내면 그만이다. 그냥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다, 어쩌면 뇌를 잘 '해킹'해서 행복감을 얻어내면 그만이라는 얘기지!


인생 별거 없다는 거다. 이 글도 끝까지 읽어주시느라 감사하지만, 오늘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일 뿐 특별한 메시지는 없다. 미안합니다. ㅎㅎ


그런 나에게도 설레고 뭉클하고 두근거리는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건 인어공주가 사연을 말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듯 말하지 못하겠다. 말하는 순간 설렘이 사라질 것 같고, 더는 떨림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인간의 나약함 한 줄기는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ㅋㅋ 인간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비밀이 있다. 그게 설레게 한다. 아쉽지만, 모두에게 시크릿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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