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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디서든 움트는 마음-새싹

기다림 끝에 움트는 작은 생명


옥상에 커다란 화분 두개를 옮겨두고는

몇 날 며칠을 방치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마가렛 몇 송이,

고추 모종 3구, 바질과 방울토마토 씨앗 등

있는대로 모두 심어버렸다.


한 번에 이것저것 심어 둔 모양새에 내 성격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초조해졌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씨를 뿌린 걸까.

발아용 흙을 더 섞었어야 할까.

물을 더 자주 줬어야 할까.

불안과 기대를 한 움큼 안은 채, 이틀이 더 지났다.


씨앗을 심은 지 4일째 되는 날,

처음 싹이 튀어 오른 곳은 의외였다.

정성껏 골라 심은 자리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남은 씨앗을 무심히 던져두었던 곳에서

작은 새싹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났다.


어디든, 어떻게든, 언젠가는 살아나는 것.

그게 생명의 힘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던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조용히, 묵묵히, 흙을 고르고 물을 주던 시간.

불안과 트라우마로 가득했던 내 마음에

작은 평화가 심어졌던 순간이었다.


오늘의 새싹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 마음속 상처들도

어쩌면 기대하지 않은 자리에서

어쩌면 예상하지 못한 모양으로

언젠가 살아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괜찮아.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돌보다 보면

나는 어느새, 또 다른 나로 자라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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