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좀비

by 아름다운꽃피는중



사람이 좋았다.

그저 사람이 있는 '술자리'가 좋았었다.

처음엔 술에 취해가며 '하하 호호' 즐거웠었다.

낯선 이를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주던 '마법의 물약'을 마시고 내면의 '알코올좀비'를 열심히

숨겨 모두에게 밝고 상냥한 내가 나는 매우 좋았다.




시간이 지나 술에 취하자

초점을 잃은 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또렷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머릿속.

점점 마법의 물약에 힘을 얻곤

알코올좀비로 내가 변신하기 전까진

모든게 만족스러웠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구에게라도 이 썩어 문 들어진 속마음을 토해내고 싶었던걸까?

그 술에 취해 누구라도 없던 잘못이라도 만들어서 사과받고 싶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도대체 누가 나를 알코올좀비로 만들어버린 걸까?

술자리에서 아까 나에게 선을 넘으며

말실수를 하던 그 새끼? 그년?

아니면 몇 년전 그 친구의 말?

이것도 아니라면 누구라도 이 절망의 슬픔에

잔뜩 절여진 '알코올좀비'의 이빨로 물어뜯어

이 불안을, 이 슬픔을 왠지 전염시키고 싶어 진다.






[프로이트는 처음에 인간의 정신세계를 의식과 전의식, 그리고 무의식으로 구분하고 의식에서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은 무의식에 갇히게 되지만 어떤 자극에 의해 무의식 내용이 의식 밖으로 솟아 나오려 할 때 그것을 억압한 것이 전의식 기능이라고 말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의 경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징벌하는 욕구를 지녔으면서도 그런 욕구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고 봤다.

따라서 건강한 자아 기능이 확립된 인간의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이며,

특히 인간의 성적인 욕구와 공격성을 어떻게 적절히 관리하느냐가 자아에게 주어진

중대업무라 하였다.

결국 건강한 자아의 기능은 일과 사랑의

두 가지 측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춰 나가는데 있다고 봤다. 건강한 자의 모습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으며, 자신의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요구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다면 성숙한 자아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한계가 없는 사람이길 꿈꿨다.

그래서 타인이 전하는 '나의 한계'에 대한

말을 인정할 수도, 그 사실이 아니라며

현실에서 매사 최선을 다하는 행동으로 증명해내지도 못했다. 늘 마음속 나를 비난하고 벌주면서도 그게 타인의 탓이길 바랐다.

'네가 날 무시해서 그래'

'니까짓 게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나보다 나를 잘 알아?'

나는 '진짜의 나'를 '타인의 입'에서 듣길

특히나 무서워했다.





누군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좋은 기회였노라 여기질 못했다.

그저 그 입의 말이 나를 아프게만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모습을 바꾸기 위한

결심을 하거나 다른 행동을 실행해볼까? 하는 건강한 생각 따윈 술을 마시는 '알코올좀비'에겐 사치였었다.

나는 늘 아픈 생각,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 탓을 누구의 탓이라도 꼭 술에 취해 찾아내고 싶었을 뿐 그들도 그들의 속에서 걸어오는 목소리에 일일이 대답하느라 오히려 나에게

쏟은 관심은 아주 찰나였었는데 난 그걸 몰랐다.




누구나 살다보면 문제를 마주한다.

다만 문제를 만나 어려운 현재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며,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슬기롭고 생산적으로 해결하느냐에 차이일뿐.




내 부적응적인 행동을 변화시키고,

보다 나은 기능적인 삶을 영위하는

'아주 보통의 건강한 나'로 살려면

나는 술을 마시고 알코올좀비로

변신하는 대신에 이제 진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결단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였다.

더 이상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해 낼 만병통치약이자 마법의 물약 따위의 '힘'에 중독되어 성장을 내버려 둔 채 무의식대로 살아가기엔 난 너무 알코올좀비화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변신도 지겹고, 되고싶은 나로 내가 살 순 정말 없는 걸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