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혼란스럽고 불쾌한 마음이 남았다.
도움이 되지 않는 만남은 혼란과 불안함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날도 왠지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현실을 착각하고 취약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몰려오는 감정을 흘려보내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건 오답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나는 또다시 불쾌감에 사로잡혀 어제 만난 사람을 곱씹었다.
왜냐하면 그 날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남의 사상이 주입되는 경험."
남의 사상이나 신념은 대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문제는 그것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잘못 말려들면 현실이 왜곡되어 나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내가 자주 휘둘리는 사람의 유형은 보통 두 가지였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
혹은 보정된 자기 자신에게 취해 살아가는 사람
과거 상아탑 안에서 내가 마주한 사람들은 전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상대를 쉽게 무시하곤 했다.
그러나 사람은 존중과 관심을 받아야 능력이 개발된다.
상아탑의 분위기와 나의 약한 자아는 최악의 조합이었고,
그 결과 나는 스스로를 약자 취급하며 기본적인 능력조차 길러내지 못한 채 점점 더 취약해졌다.
3년 전, 결국 나는 상아탑에서의 사회에서 나와 일반적인 사회에 발을 들였다.
여기서는 더 이상 누군가가 나를 일방적으로 휘두를 수 없을 거라 믿었지만, 방심한 틈에 또 다른 방식으로 강한 사상에 휘둘렸다.
덕분에 지난 2년 동안 나는 많은 사람을 원망했고, 분노와 억울함 속에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째선지 많은 타격을 입어버렸고, 그 결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제도, 나는 만난 사람을 곱씹으며 똑같이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호감 신호 같은 건 보낸 적이 없는데, 왜 나를 설득하려 드는 걸까?
나는 단지 당황해서 웃고 있었을 뿐이다. 불쾌한 티를 내면 무례할까 봐, 그냥 되는대로 생각나는 얘기를 내뱉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안하다는 핑계로.
거절하지 못해 싫은 경험을 했고, 그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타격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남을 비난했다.
사실 나는 부모님, 형제, 직장 동료, 학교 동기들의 생각조차 단 한 번도 제대로 거절해본 적이 없었다.
내 생각대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책임을 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거절 없이 받아들이고, 선택하지 않은 채 타격을 떠안고,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너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폭발하며 비난을 퍼부어왔다.
이것이 의존이 아니면 무엇일까?
책임지기 싫다는 핑계로, 미안하다는 핑계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기보다
나는 당당하게 거절했어야 했다.
나는 당신과 다른 인간이다.
나는 내가 옳다고 확신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거부할 수만 있다면, 거부권만 확실하다면 이렇게까지 곱씹을 이유도 없다.
이렇게 분노하며 억울해하고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내가 아직 바꿀 수 있는게 많이 남았어.
나는 강해져야지.
외로워서, 두려워서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내가 완전히 강해져야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남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고 원망하는 게 아니다.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남이 집어넣은 것들을 깨끗이 잊고
내 것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나의 여성상, 연애관, 인생관이다.
강해진다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아닐까.
주인공인 나와 엑스트라인 타인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주인공의 판단이 곧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자각 말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강해지지 못했기에 오늘 같은 불쾌감과 좌절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감정이 전부 진실은 아니며, 잘못된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남의 말을 믿으려는 마음이 남아 있더라도,
나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바꿀 것이다.
이번 주의 나는 끊임없이 강해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다.
- 동료 직원이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을 때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세상에 객관적인 사람은 없고, 이 사람도 자기 입장에서 말할 뿐이다.
나는 내 의견을 전달하며 선을 그었다.
- 직장에서 사소한 허점이 드러났을 때
더 이상 불안해하며 곱씹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작은 허점 때문에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 가족이 나보다 더 많은 걸 아는 듯해 위축될 때
그들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그런 능력은 때가 되면 채워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엄마가 내 현실에 미묘한 반응을 보였을 때
나는 기죽지 않았다.
내가 이룬 것은 내 능력이고,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남의 생각이 진실이고 내 생각은 허상이라는 식의 착각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굳이 따지며 싸우지 않았고, 더 이상의 소통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