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와 딸기 요플레
외할아버지는 부자셨다고 엄마는 종종 말한다. 배 만드는 회사를 가지고 계셨다고 하셨다. 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는건데? 하고 묻자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친구가 보증을 서달라는 말에 보증을 서주셨고,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간암 판정.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셨구나.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외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한 이야기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외할아버지는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만나러 왔다. 더운 여름 사람들이 쓰러지는 한 여름에도,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한다. 나를 만나려는 힘으로 몇년 더 사신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항상 나는 외할아버지가 오시면 즐겁고 명랑하게 맞았다. 외할아버지는 항상 나를 만나면 딸기 요플레를 사주셨다. 목마도 태워주셔서, 외할아버지 머리와 목덜미에 요플레를 흘리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여수의 아침에도, 밤에도, 한낮에도 어김없이 나는 목마를 타고 쭈쭈바나 요플레를 먹으며, 외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매우 아끼신 듯 하다. 함께 나눈 대화나 이런것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인간의 뇌는 왜이리 고성능의 기억지우개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괴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생존 전략이었겠지. 아아, 우리는 잊어야만 한다. 하지만, 좋은 기억들도 잊어가는 것은 어째서일까.
나는 괴로운 삶이 있을 때마다. 이어지는 실패가 있을 때마다 딸기 요플레를 먹고는 한다. 나에게 준 사랑, 조건 없는 사랑과 목마는 내 무의식 속에 존재해 나를 구성하는 양분이 되곤 한다.
내가 힘들 때, 만약 외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다정하신 분,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신 분, 지금은 기억의 저편으로 가신 분을 생각한다. 어떻게 생겼었는지, 말투는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가 내가 외할아버지가 딸기 요플레를 사준 것을 기억한다고 하면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그때마다 초면이다.(미안하다) 오로지 딸기 요플레를 흘리며 먹고, 쭈쭈바가 너무 단단하면 크고 단단한 손으로 주물러 주고 하신 그런 것만 기억난다.
나는 새우깡을 지금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좋아했었다. 이유는 갈매기들과 같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목마를 태워주셨는데, 그때 아기인 나에게 갈매기가 다가오기도 했다. 새우깡을 번쩍 들면, 갈매기떼가 다가온다. 갈매기와 새우깡을 나눠먹으면 어느새 새우깡이 없다.
외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지만, 지금은 목소리조차도 사라지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었다. 마음이 상하고 뜨거워지는 말이다. 우리의 기억에서만 살고, 존재하시는 분이 되어 슬프다. 살다가 기분 상하는 날이 오면, 어쩌다 내 삶이 무가치해지면 쭈쭈바를 꺼내서 주무른다. 일부러 딸기 요플레를 흘리며 아기처럼 먹는다. 철퍽철퍽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