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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의 거리감

거리감이라는 건 너무 어려워

by 코알코알

한국사 선생님을 존경한 적 있었다. 나는 그 선생님께 자주 애정을 표하고, 그 선생님도 스승과 제자로서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사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한국사를 사랑하며 한국 그 자체를 사랑한 선생님을 사랑했다.

그 선생님은 내 의견에 대해 들어주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날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만 보였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시력이 매우 나쁘다. 나에게는 도수가 매우 높은 근시용 안경이 있었고, 아버지께는 가끔 쓰는 망원경이 있었다.


푸른 하늘이 반복되던 나날들, 나는 강을 건너 작은 집에 있는 장미가 창 너머로 보였다. 하루는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보고 싶던 적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는 장미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시력이 나쁜 나는 장미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교실에 있는 안경을 꺼내오면 흥이 식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종이 울릴 때까지 푸른 하늘 아래 장미만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도 장미가 계속 생각이 났다. 수업이 끝나고 안경을 그대로 쓰고 장미를 보았다. 정말 예쁘고 선명해져서 만족했다.


나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장미는 지는 날이 오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날, 아버지의 망원경을 몰래 가져오게 되었다. 잃어버릴까봐 겁이 났지만, 예쁜 장미를 자세히 보고 그대로 두면 아버지도 모르실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랬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장미를 세세하게 뜯어봤다. 맨눈으로 봤을 때,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장미는 아름답지 않았다.


보고 싶다는 욕망에, 상대방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망에 지나치게 다가가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거리감에 대해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는 장미를 자세히 보고 싶다는 욕망에 망원경을 꺼내게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장미 자체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 더 알고 싶다는 집착과 어찌 보면 거리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그런 마음까지 다 가지고서는 장미를 보고 아름답지 않아 실망하고 있었다.


장미는 시든 부분이 있었다. 장미는 햇볕에 탄 부분도 있었다.


그 모든 부분을 사랑할 준비는 나는 되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부분에서 망원경을 꺼내드니 장미도, 나도 상처 입고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폭풍과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친구가 되면 급속도로 친해지고 싶다. 내가 독점하고 싶고, 거리감은 허용되지 않는다. 내가 친구가 없는 것도 어쩌면 그렇다. 장미가 아름답고 싶은, 평범한 장미이고 싶은 장미의 마음은 무시한 채 진심은 통한다는 칼로 무참히 찌른 것이다.


나는 친구가 많다. 초반에만. 많은 이들이 나를 떠나곤 한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특별한 친구로 남고 싶다는 욕망에 거리감을 재지 못한다.


이 깨달음이 어쩌면 한국사 선생님께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한 채로, 나는 한국사 선생님께 이 사실을 친구가 없는 이유는 빼고 말했다. 친구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하실 테니까. 하지만 눈치채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한국사 선생님은 공감한다는 듯이, 너 말이 맞다는 말을 하셨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셨다.


쨍쨍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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