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미 있다는 말이 칭찬이라구요?
학교에서 롤링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교사가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롤링페이퍼는 은근한 폭력일 수 있으니 제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익명성과 의무감이 결합된 이 의식은, 누군가에게는 칭찬일 수 있어도 누군가에겐 상처가 된다.
그 당시 나는 학급의 임원을 맡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좋은 말을 적어주려 애썼다. 나도 당연히 그런 말을 받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롤링페이퍼에서 마주한 단어는 백치미였다.
백치는 정신 지체나 지적 능력이 미달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뒤에 ‘미’를 붙여서 마치 너는 귀엽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식의 선물로 포장해 준다. 이건 어쩌면 무례한 말에 리본을 붙여서 건네는 것과 같았다.내가 그 말을 보고 상처받은 이유는 단순히 단어 때문만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한 줄짜리 이미지로 납작하게 만들고, 그 안에 나의 모든 결과 복합성을 지워버리는 방식 때문이었다.
나는 느긋한 성격이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상황이 있으면 웃기게 잘하기도 하고, 선생님이 학생을 시험 성적으로 차별하는 말을 하면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다른 애들은 나를 좋게 봐주는 애들이 있는 반면에, 왜 저렇게 튀는지 의문을 가지는 애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애들은 만만한 사람이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귀엽지만 바보같은 존재였다.
실은 나에게도 인정욕구가 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면서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컸다. 춤을 웃기게 추고, 웃긴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는 행동 뒤에는 나를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사실 선생님의 시험 성적으로만 줄 세우는 것에 항의를 한 것 기저에는 나를 사랑해 달라는 속마음이 있었다. 만약 내가 시험 성적으로 대우를 받는 쪽이라면 굳이 문제 제기를 안 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어떤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나는 너가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지 사실 처음에는 잘 몰랐어. 근데 의외로 너는 공부를 잘하더라. 그렇게 등수가 높을 줄도 사실 잘 실감이 안 가긴 했어.”
이 말은 칭찬이었지만, 나에겐 그렇게 행동하는 애가 공부를 잘 할리는 없다는 편견으로 들었다. 아마도 백치미라는 표현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기 떄문일 것이다.
나는 왜 그 백치미라는 표현이 기분이 나빴을까? 노벨상 수상자가 나처럼 행동한다 한들, 세계적인 수학자가 그랬다고 한들 백치미라고 욕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마릴린 먼로도 떠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백치미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마릴린 먼로가 백치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시를 쓰고, 책을 즐겨 읽었던 지적인 여자였다. 하지만 대중들은 마릴린 먼로가 백치미여야만 했다. 귀엽고 어리숙한 금발 미녀. 대중들은 먼로가 그렇게만 존재하기를 바랐다.
롤링페이퍼에 내가 백치미가 있다고 적은 애는 나와 앙숙이었다. 그 애는 담배를 피우고 야자를 싫어하고, 시끄럽게 하고, 다른 애들을 괴롭혔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야자를 빼지마라 괴롭히지마라 시끄럽게 하지 마라. 나는 항상 제동을 거는 사람이었고, 말로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은 담배를 피는 양아치는 좀 무서웠다. 거리에서 팔에 문신을 가득 채운 사람을 만난 듯한 위압감이 있었다.
그 애에게 나는 얼마나 거슬리는 존재였을까. 아마 그 애는 나를 귀엽고 무해한 바보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보다 덜 위협적이고, 조롱하기 쉬운 존재가 되니까. 그때 나는 룰을 따르지 않는, 규범 밖의 사람이었다. 그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대중이 귀엽다고 여기는 대상은 때로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은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자신을 귀엽게 포장한다. 배우 마동석처럼 덩치 크고 힘 있는 사람도, 귀여운 이미지로 소화시켜 소비된다. 무해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다.
“너는 귀엽고 안전한 사람이야”
이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프레임이고, 어떤 사람은 그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더 서럽고, 아쉬웠다. 나는 롤링페이퍼를 읽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애는 더 기세등등해졌다.
학교는 군대처럼 획일성을 요구하는 공간이었다. 감정을 표출하면 약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나는 웃음은 허용되지만, 울음은 금지된 세계에 살고 있었다. 다른 친구에게 상담하니 노래를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는 애가 이런 것을 신경 쓰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그 때 왜 기분이 나빴는지 자세하게는 몰랐다. 오늘 감정을 자세히 따라가고 집요하게 물은 결과 왜 이것이 기분 나쁜 말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감정을 자세히 따라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처럼 자책은 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