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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고소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삶과 생존

by 코알코알

나는 세 번을 고소했다. 일곱 살, 스무 살, 스물 다섯 살. 가해자는 모두 다 달랐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놀랍게도 똑같았다. 말하지 말라는 눈빛, 기억하지 말라는 위로, 조용히 사라져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처음은 너무 어렸고, 두 번째는 피할 수 없는 가족이었고, 세 번째는 같은 학교의 학생이었다. 내가 그 일들을 ‘성추행’이라고, '성폭행'이라 부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그냥 넘기자고 할 때,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경찰서에 갔다.


하지만 법은 느리고,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나는 너무나도 예민한 여자가 되었다. 나는 솔직한 사람인데 숨겨야 할 비밀이 생긴 것 같아 불편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성추행 경험이 있는 여자친구나 성폭행 경험이 있는 여자친구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품어달라는 사람이 반, 감당하지 못할 수 있으니 놓아달라는 사람이 반이었다. 나는 그런 글들을 보며 혼자 끙끙 앓으며 나중에 사귈 사람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해야할지 아니면 털어놔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들어야 하고, 밤늦게 걷고 있자 만원을 줄테니 술을 따르라는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다. 버스에서는 낯선 손이 내 허벅지를 쓰다듬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의 일상은 이런 식으로 조각나고 있다.


왜 여성은 조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가. 나는 일상을 살았고, 법의 절차를 따랐다. 그런데도 세상은 바뀌는 것은 없다. 오히려 내가 외로워졌다.


미투 운동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는 진심으로, 세상이 바뀔 줄로만 알았다. 2018년, 검찰 조직 내부에서 겪은 성추행 피해를 뉴스 인터뷰를 통해 고백했다. 그 고백을 시작으로 수많은 가해자들의 이름이 드러났고, 침묵하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전방위로 퍼져나갔다. 말해도 된다는 것,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기묘한 경험이었다. 성인지감수성, 권력형 성범죄, 2차 가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언어들이 급격히 일상에 등장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수록, 더 큰 상처를 입는 장면도 반복됐다. 2차 가해, 신상 노출, 악의적인 의심. 누군가는 용기를 냈고, 사회는 그 용기에 차가웠다. 고소를 해도 처벌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고,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히 부당했다.


미투 이후에도 성폭력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의 말하기는 여전히 '예외적인 용기'로만 취급되었고, 그런 말하기조차 사회는 점점 다시 조용히 만들었다. 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조용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다시 침묵시키려는 이 사회는, 솔직히 말해 역겹다.


나는 피해자다. 동시에 생존자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몸이 굳고, 성폭력 관련 뉴스를 볼 때면 심장이 거칠게 뛴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고, 말할 힘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말해야 한다. 어쩌면 내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너무 흔해서, 너무 많아서, 쉽게 지워지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말할 것이다. 잊지 않을 것이며, 마주하기로 했다.


왜 여자는 밤길에 만원을 줄테니 술을 따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왜 피해자는 의심받고 입증해야하는가. 왜 고소를 세 번이나 해야만 했는가. 여성에게는 평범한 공간조차 안전하지 않다.

고소를 세 번이나 한 이유는 고소를 한다는 그 행위 자체가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번거롭고 수치스러운 과정일지 몰라도, 나는 내가 나를 믿고 지키는 과정이었다. 범죄자는 죄를 받아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도덕책이 아니라, 나는 범죄 이후에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어서. 그래서 고소를 했다. 우리네 삶은 연속적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현실이다. 피해자의 삶을 도려낼 수 없기에, 고소 과정에서의 2차 가해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다. 나는 고소의 과정도 치료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경찰관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카운셀러라고 생각하며 그저 사실을 반복해서 말했다. 나의 피해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변호사를 사고서도 감옥에 들어갔다. 그 후에는 편하게 잊을 수 있었다.


2차 가해를 일삼는 이들에게 한마디를 하며 끝내고자 한다. 2차 가해를 일삼는 이들은 오랜 시간 유전적으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량종이다. 그들은 권력과 힘의 방향을 알아 피해자 앞에서는 이빨을 드러내고, 가해자 앞에서는 길들여진 개가 된다. 그들은 마치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조련한 질서의 수호자처럼 행동한다. 시원하게 한마디 하겠다.



그렇게 살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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