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리와 법 사이, 챗GPT와 지브리풍 사태를 보며

AI와 창작, 윤리의 경계에 선 우리

by 코알코알
하야오 지브리풍.jpg 챗GPT에 대해서 비판한 하야오를 다시 GPT로 돌린 사진

이번에 GPT에서 업데이트를 하였다. 그걸로 GPT회사는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다.

하지만 왜 나는 이 GPT앞에서 멈칫하는가?

오늘은 내가 멈칫한 이유에 대해서 써보기로 한다


챗GPT에서 이번에 업데이트한 내용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챗 GPT에서 며칠전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업데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지브리 이미지 변환과 디즈니 스타일 이미지 생성, 네컷만화를 그려줌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사진이나 이미지를 집어넣으면 지브리스타일의 이미지로 재탄생 시켜주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듣고 처음에는 신기하다정도로 생각을 했지만 뉴스에서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브리 이미지 생성은 많은 이들에게 묘한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찝찝함이 묻어나왔다.


실제로 원피스의 애니메이션 감독 이시타니 메구미는 "지브리를 더럽히다니...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올렸다.

또한 지브리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ai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렇게 거장 작가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왜 지브리풍의 이미지를 생성하면서도 묘한 불편함을 갖고 있을까?


ai가 만들어낸 이미지 하나, 누가봐도 지브리의 이미지이다. 색감과 화풍이 지문수준인 지브리의 이미지를 '딸깍' 하나로 만들어낼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브리가 그리거나 사람의 손길이 닿은것은 아니다. 지브리에서는 저작권 침해로 GPT를 고소했지만, 법적으로 저작권 침해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느끼고 있다. 이것은 지브리가 쌓아온 지브리만의 따뜻하고 포근한 정서를 빌려온 것이고, 그 정서를 만들기 위해 수십년간 지속된 창작 역사는 어느새 무임승차 대상이 되었다. 법은 지브리 화풍이기 때문에 화풍의 저작권은 없다고 말하며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법은 이 사건을 명쾌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오히려 법은 한발 늦다. 기술은 이미 우리 윤리를 앞질러 버렸다.


우리가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현재, ai는 곳곳에서 쓰이고 있으며, 사람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그림 공모전에서 ai가 쓰여 탈락하는 등의 일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현 버츄얼유튜버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유콘이라는 사람의 방송에서 공모전을 열었는데 ai를 트레이싱한 사건이 벌어져서 공모전에서 탈락한 사람이 있었다. 내 주변에서도 간단한 컴퓨터 코딩을 해주기 때문에 신입 개발자를 뽑지 않는다거나 카피를 ai가 더 잘쓰기 때문에 카피라이터를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절대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던 바둑도 인공지능 없이는 해설도 안되고 연습도 ai와 한다는 소식이 있다. 이세돌 9단은 바둑을 접었다. 현재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너무 가슴아프고 미어터지는 사건들이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의 문제는 또 있다.

전쟁 지브리풍.jpg 전쟁에 대한 지브리풍 그림 GPT는 윤리기준이 없는듯 보인다.

전쟁에 대한 그림이나 지금은 막혔지만 히틀러나 나치에 대한 사진을 넣고 지브리풍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준다는 것이다. 전쟁 미화이다.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미화이다 등등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서 지브리풍으로 이미지를 생성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챗 GPT와 대화를 해 영감을 얻고 글을 쓰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ai가 제안한 글을 그저 받아적거나 간단한 편집만 할때, 우리는 창작자인지 편집자인지 의문이 든다. 윤리는 종종 이런 회색지대에서 고개를 든다.


'법은 허락했지만, 인간성이 허락했는가?'

'표절은 아니라지만 정단한가?'


이러한 질문은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법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법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ai와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윤리라는 것은 어쩔때는 법보다 뾰족하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그런 의식을 지녀야 한다. 이 행동으로 인해서 타인의 노력과 가치를 침해하지는 않는지. 내가 진짜로 창작가로 남아 있는지에 대한 성찰과 물음이다. 지브리풍 논란이 가장 큰 메세지는 법을 지켰다고 해도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느낌대로 살아간다. 불편함은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때 찾아온다. 지브리가 GPT를 보고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한 것 또한 함축적인 의미이다.


어떠한 고뇌도 없는 '딸깍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AI는 분명 인간의 창작을 확장시키는 도구다. 그러나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법이라는 ‘늦은 정의’와 윤리라는 ‘즉각적인 감각’ 사이에서, 우리는 더 나은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균형은 결국 ‘사람다운 감수성’에서 시작된다. 그것만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몫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요즘 업로드가 뜸했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