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의 완전한 망각이 아닌 기억의 탈색
작가는 모든 상처를 잊으라고 말하지 않고,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어떻게 견디며 살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한강의 흰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하려는 노력과 망각’이다. 죽은 언니를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이야기한다. 죽은 언니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 망각의 불가능성, 애초에 기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에는 있다.
“나는 흰 것들에 대해 써 보려 한다.”는 문장은 단순한 서술이 아니다. 죽은 누이가 경험하지 못 했던 모든 흰 것들에 대해 느끼는 부재와 기억, 그리고 망각이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1부의 「나」는 사실상 탄생문이자 추도문이다. 죽은 아이인 언니를 언어로 다시 살아나게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부활’이 아닌 ‘기억을 통한 지속’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기억의 매개체로서의 인간이다. 화자는 죽은 자들은 말하지 못함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말하지 못한 생명(죽은 언니, 죽은 흰 개)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1부에서는 녹이 슬고, 못 같은 뾰족한 것으로 긁어낸 듯한 흔적이 새겨진 철문이 나온다. 이 지저분한 철문을 흰색의 페인트로 덮는 행위는 죽음을 망각으로 덮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흰색의 페인트로 문을 덮는 행위는 죽은 언니를 그만 애도해야 함을 은유한다.
철문을 없애서 새로 다른 문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포인트로 봤다. 얼룩덜룩 녹이 슬고 문에 여러 흠집이 있는 철문을 흰 페인트로 덮는 부분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우리는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철문에 페인트칠하듯 죽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감쌀 수 있다. 우리는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기억을 조금 다른 식으로 불러오는데, 그것은 기억의 재구성이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망각은 억압이 아닌 생존의 기술이다. 흰 페인트로 덮는 것은 인간의 기억 재구성을 뜻한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기억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이 일을 철학적으로 볼 때, 하이데거는 기억과 망각의 균형으로 자신의 존재를 재정의한다고 말했다. 죄책감을 지우는 방식의 망각이 아닌, 자신을 벌하지 않기 위해 흰 것을 선택하는 것은 윤리의 영역이라고 한강 작가뿐 아니라 하이데거는 말한다.
2부의 「그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우리 모두가 사실은 모래의 집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는 구절이다. 모래는 언젠가는 부서지고 끈질기게 손톱사이로 빠져나간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삶이란 유한하며, 그것을 지탱하는 기억 또한 유한하고 덧없음을 시사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비극에 마주하는데, 그것을 모두 기억할 수 없으며, 기억하는 것도 유한함을 모래로 빗대어 표현한 장면이라 인상깊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내 삶이 유한하기에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철학자 카뮈는 “인간은 끝내 패배하지만, 반항하는 행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고 하였다. 나도 카뮈와 생각이 같다. 반항하는 행위인 삶은 패배인 죽음 앞에서 의미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키르에르케고르는 유한하고 언젠가 끝나는 삶 속에서, 마치 모래와 같은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 생각한다.
3부의 「모든 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란 ‘파르스름한 틈’이다. 여기서 파르스름이란, 어둠과 빛 사이의 경계를 말한다. 또한 죽음과 삶의 사이를 보여주는 말이다. 완전히 사라진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상태를 파르스름으로 표현하는데, 틈은 존재를 뜻한다. 즉, 죽은 언니와 죽은 흰 개 등이 남긴 상처와 기억을 뜻한다. 화자는 흰 개가 죽자 ‘나는 개를 쓰다듬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한다. 작가인 한강은 기억과 상실의 공간을 파르스름한 틈으로 설명하였다.
이 작품은 일관되게 결핍과 상실 그 속에서 존재를 기억하는 한 인물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망각은 필연적이며, 망각 역시 윤리적이라는 사실을 다룬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상실을 경험한다. 작게는 애착인형이 망가져 버리게 되거나, 키우던 개가 죽거나 하는 그런 상실 말이다. 아니면 친구나 지인, 가족들이 죽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을 경험하는데 망각, 그러니까 상실 이후의 망각에 대해서는 아주 큰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고, 망각은 아주 필연적이며 모든 이들에게 끝은 있다며 위로를 건네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