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서

by violet

안개 자욱한 아침이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고추수확이 시작되었다. 집 근처 작은 텃밭은 나의 먹거리와 소일거리를 위한 밭이고 이곳은 산속에 있는 약간 규모가 있는 과수원과 밭이다. 작년엔 들깨를 심었고 올해는 고추를 심었다. 비가 많이 오면 공들인 농사가 헛일이 된다. 다른 지방은 폭우로 인해 피해가 심한데 이곳은 비가 적당히 와서 괜찮다. 침 6시부터 5시간 동안 과수원 옆 고추밭으로 가서 혼자 일을 했다. 새가 고추를 먹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는데 오늘 보니 수확량의 절반은 새가 쪼아 먹어 버린 거 같다. 잘 익은 고추의 끄트머리만 쪼아 먹기도 하고 어떤 것은 가운데를 다 파먹은 것도 있다.

초당옥수수는 고라니가 와서 절반은 먹고 가더니 이제 다 익은 고추는 새가 먹는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꿩이 날아왔다가 푸드덕거리고 날아간다.

안개가 걷히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점점 열이 나고 숨이 가빠온다. 예전엔 죽기 살기로 일했는데 지금은 심호흡을 하며 숨 고르기를 한다. 이 악물고 일하느라 턱관절에도 무리가 와서 힘이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턱에 힘을 빼려고 노력한다. 남들보다 체력도 약하고 몸이 약한데 정말 깡으로 정신력으로 버틴다.

체력만 받쳐주면 나는 농사가 체질인 듯하다.

삼복더위에 뙤약볕 아래서 일하는 농부님들과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님들께 진심으로 고생하신다고 전하고 싶다.

일도 힘들고 더운데 모기까지 물면 최악이다. 온몸을 가렸지만 옷을 뚫고 무는 산모기는 정말 끔찍하다. 그 가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옥훈련을 받는 기분이다.

비바람에 기울어진 고춧대를 바로 세우고, 벌레와 새가 갉아먹은 건 따로 모아 버리고, 빨갛게 잘 익은 고추만 골라 딴 후 꼭지까지 딴다. 농사일을 하려면 시력도 좋아야 할 듯하다.

그래도 지금은 세월이 좋아져서 옛사람들에 비하면 고생도 아닐 거다. 세척 기계도 나오고 건조기도 있어서 예전처럼 일일이 고추를 널고 다시 걷고 했던 수고로움은 없지만 여전히 고춧가루가 되기까지는 많은 손이 간다.

어깨허리가 아파오고 머리가 지끈거릴 쯤이면 오전 일을 그만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침이슬과 땀으로 입은 옷과 장갑이 다 젖어 축축하다.

올여름은 또 얼마나 피부가 빨갛게 익을까..

얼마나 관절과 근육들은 아파올까..

모기들은 얼마나 내 피부를 물어뜯을까..

그래도 하루 종일 일하는 건 아니니 다행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세월이 흘러갈 것이고 한 고갯길을 또 넘어갈 것이다.

새들이 끄트머리만 쪼아 먹은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