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계절
평소 새벽 이 시간쯤이면 창밖은 환해있을 시간인데 여전히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는 시원하고 귀뚜라미는 끊임없이 울어대고 다시 피어난 분홍장미는 이 서늘함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저마다 가을을 느끼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가을을 유난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가을소녀이길 바랐고 단풍이 물든 풍경과 낙엽 지는 걸 좋아했다. 그땐 엽서나 편지지도 어쩜 그렇게 낭만적인 사진들이 많았는지.. 늘 예쁜 사진이 있는 엽서를 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로 가 있는 것처럼 가을이란 계절을 생각하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 풋풋했던 기억의 조각들이 나를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시골에 와서 가을을 느끼는 방법은 바람결에 실려오는 칡꽃향기의 싱그럽고 달큼한 향을 맡는 것이다. 일부러 칡꽃이 많이 피어있는 길을 찾아다니며 향기를 맡고 그 보랏빛 꽃을 감상한다. 칡넝쿨의 단점은 그 강한 성장세가 다른 나무를 말라죽게 한다는 것이다. 칡넝쿨에 감긴 소나무가 말라죽는 걸 가끔 본 적이 있다. 은행나무나 아카시아나무는 칡넝쿨에 좀 강한 듯하다.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는 식물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번지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숨 못 쉬게 해 버리면 왠지 슬퍼진다.
아카시아꽃이 피어나는 봄에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칡꽃이 피어나는 가을이 오고 있으니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지고 늦여름 칡꽃향기를 맡으며 계절이 오고 감을 느끼는 이 순간도 감사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걷는다. 잘 관리된 논은 벼들이 잘 자라고 관리하지 않은 논은 잡초들이 가득하다.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상념들도 저 잡초처럼 무성해지기 전에 잡초를 뽑듯 부지런히 불필요한 잡념들을 제거해야겠다.
뒤뜰에 무성한 풀들을 베고 나니 그 속에 숨어있던 보라색 맥문동꽃과 분홍색 상사화가 존재감을 뽐낸다.
이 더위속에서도 장미와 백일홍, 봉선화는 여전히 피고 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곧 가을배추를 심어야 해서 밭을 정리하고 토양 만들기를 했다. 오후 5시가 넘었는데도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가을 낭만은 이제 꿈속에서나 찾으려나..
현실의 가을은 늘 바쁨의 연속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랐다.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빨리 오기를 바랐고, 서른엔 마흔 살이, 마흔엔 오십이 되길 바랐다. 여전히 지금도 육십을 기다린다. 세월이 십 년 정도 흐르면 뭔가 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세월이 빨리 흘러가 버리기를 소망한다. 그렇다고 지난한 세월 탓이나 하며 낙담하지 않는다. 바쁜 현실 속에서 매일 새로운 기쁨을 찾으며 더딘 세월을 열심히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