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무겁고 정신은 비몽사몽 하더니 한차례 세찬 비가 쏟아진다. 비가 내리니 몸은 조금 풀리는 듯하고 정신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자발적 운동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걷게 되는 강제적 운동을 하곤 한다. 그럴 땐 이렇게라도 걸으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생각하고, 농사일로 힘들 땐 이렇게라도 부모의 은혜를 갚으라는 것인가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할 땐 이렇게라도 사회에 봉사하라는 것인가 생각한다.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삶을 견디기가 버거울 듯하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고 최승자 시인은 삼십 세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지만 오십이 넘어도 인생은 늘 어렵고 힘들다.
어떤 생각으로도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방법이 최고다. 나는 은둔형 극 i지만 세상밖으로 나가야 할 때는 결연한 의지로 생각을 초긍정으로 세뇌시킨 다음 행동으로 옮긴다.
정신과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내방으로 또다시 내쳐지더라도 살아있는 한 움직여야 한다.
삶에 애착이 없는데도 이렇게 살아내려고 하는 것이 의아하지만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죽지 못해 겨우겨우 사는 삶보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뭐라도 하면서 하루를 바쁘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잡다한 상념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시대. 나의 통증이 아픈 노인들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무기력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간은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아프지 않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