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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레이트 521편의 두바이 공항 동체착륙

by 구분

안전한 항공사

에미레이트 항공은 안전한 항공사 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1985년 창립이래 항공기 손실이나 치명적 사고를 겪은 적이 없다. 가장 안전한 항공사를 떠올릴 때 에미레이트 항공은 반드시 포함된다. 안전 기준도 높지만 운도 따라주었다. 2016년 8월 3일, 이날은 운 나쁜 하루가 펼쳐진다.


기장 34세. 총 비행시간 7,457시간. 이중 보잉 777 비행시간은 5,123시간이다.

부기장 37세. 총 비행시간 7,957시간. 보잉 777 비행시간은 1,292시간이다.


오늘 비행은 기장이 담당한다. 기장은 22살에 A330 부기장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1년 반 전 777 기장 승격 훈련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기체는 2003년 생산된 기령 13년의 보잉 777-300이다. 아직 항공기가 손실될 정도의 큰 사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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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레이트 521편은 인도 케랄라 주 최남단 티루바난타푸람에서 두바이로 가는 정기 항공편이다. 두바이 인구 중 인도 출신이 27.5%를 차지한다. 이들 중 40%가 인도 남부 케랄라 주 출신이다. 승객 282명. 아이들은 60명. 객실 승무원 16명. 모두 300명이 탑승했다.


윈드시어

오후 12시 30분. 오전 10시 6분에 출발한 에미레이트 521편은 3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고 두바이에 접근하고 있다. 두바이의 한낮 기온은 매우 불안정하다. 섭씨 49도의 뜨거운 날씨다. 매일 아침, 페르시아만에서 달궈진 뜨거운 해풍이 저기압인 두바이 국제공항 상공으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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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할 활주로는 12L, A380이 운영되는 3600미터 길이의 활주로다. 초당 13노트의 뒷바람이 불고 있다. 반대편인 30R 활주로에서도 비슷한 강도의 뒷바람이 불고 있다. 풍속과 풍향이 급변하는 윈드시어가 만들어지기 딱 좋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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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레이트 521편에 앞서 간 두 항공기는 윈드시어 때문에 착륙을 포기하고 회항했다. 그러나 그 정보를 관제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관제사도 회항하는 이유를 묻진 않는다. 에미레이트 521편은 윈드시어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앞선 에미레이트 항공 777 두 대가 착륙한다.


관제탑: 에미레이트 521. 12L 활주로에 착륙 허가합니다. 풍향 340도, 풍속 11노트.


활주로 앞까지 정상 속도와 고도로 접근한다. 활주로 상태가 심각하다. 표면 온도가 무려 섭씨 68도다. 활주로에 달궈진 공기가 상승 기류를 만들어낸다. 고도 450피트.


기장: 착륙합시다. Landing.

부기장: 알겠습니다.


이때 풍향은 317도에 풍속 10노트.


부기장: 16노트 순풍입니다.

기장: 확인.


부기장: 13노트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장: 확인.


활주로 시단 100미터 지점, 고도 40피트에서 기수를 들어 플레어 동작을 취한다. 조금 빨랐다. 빠른 플레어가 상승 기류를 만났다. 이어서 윈드시어에 부딪힌다. 뒷바람이 갑자기 앞바람으로 바뀐다. 속도가 순식간에 12노트 증가했다. 양력이 증가해 하강이 안 된다.


기장: 상승 기류다. Thermals!

부기장: 확인. Check.


상승기류도 있지만, 윈드시어에 휘말린 더 심각한 상황이다.


돌풍이 기체를 왼쪽으로 밀어댄다. 기장은 조종간을 반대편으로 꺾는다.


기장: 이런. Oops.


오른쪽 바퀴가 지면에 닿는다. 에미레이트 항공 규정상 복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 어라운드!

양쪽 바퀴가 모두 닿았다.


기장: 복행! Go around!

부기장: 알겠습니다. Okay.


기장은 복행 선언을 한다. 복행은 긴급한 상황으로 과정을 최적화하기 위해 테이크 오프, 고 어라운드의 약칭인 TO/GA 버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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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A를 누르면 비행컴퓨터는 복행 모드로 전환되고, 복행 추력으로 자동 설정한다. 단, 지상에서의 오동작을 막기 위해, 바퀴가 땅에 닿은 상황에서는 비활성화된다. 지금 TO/GA 버튼은 비활성화 상태다. 조종사는 바퀴가 땅에 닿았다는 걸 모르고 있다.


이륙 추력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륙 설정 경고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추력 레버가 앞으로 이동하지 않았기에 비행 컴퓨터는 이륙 상황이라고 판단하지 않아, 경고음도 울리지 않는다.


기수는 올라가 상승하지만 속도는 떨어지고 있다.


부기장: 상승 중. Positive climb.

기장: 랜딩 기어 올림. Gear up.


얼핏 보면 정상적인 복행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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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er: 에미레이트 521. 고도 4000피트까지 상승하십시오. Emirates five two one continue straight climb four thousand feet.


부기장: 고도 4000피트까지 상승.

부기장: 기어 올립니다. Gear up.


현재 고도는 85피트. 갑자기 활주로로 떨어진다. 추락 경고가 나온다.


GPWS: Don’t sink.


윈드시어인 건가?


기장: 윈드시어다. TO/GA! Windsear. T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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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기장은 TO/GA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속도는 131노트까지 줄었다. 떨어지고 있다.


동체착륙

엔진은 급가속을 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기체는 랜딩기어를 접은 채 활주로에 충돌한다. 강한 충격이 기체를 강타한다. 기체는 스파크를 일으키며 활주로를 미끄러진다. 동체착륙한 기체가 똑바로 간다는 건 조종을 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너무 높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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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떨어지면 방향타로 제어할 수 없는 시점이 온다. 속도가 줄자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기운다. 2번 엔진이 떨어져 나간다. 기체는 800미터를 미끄러진 뒤 활주로를 벗어났다. 기체는 180도 회전하며 바로 옆 유도로에 멈추었다. 궤적은 엉망진창이지만, 물리법칙상 어쩔 수 없다. 활주로는 불과 170미터 남겨놓았다. 3600미터 길이의 활주로가 아니었다면 기회는 오지 않았다.


기장: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에미레이트 521, 비상탈출 합니다! Mayday, mayday, mayday, Emirates 521, evacuating!


기장은 관제탑에 비상탈출을 알린다.


비상탈출

운이 좋았다. 객실 내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조종사는 비상 대피 절차를 시작하며 승무원에게 대기를 지시한다.


기장: 어텐션. 승무원들은 대기하십시오. Attention, crew at stations.


멀쩡한 승객들이 일어나 짐을 챙긴다.


객실 승무원 기내방송: 승객 여러분. 자리에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창밖으로 시커먼 연기가 보인다. 지금 짐을 챙기지 않으면 불에 타 사라질 것이다. (얄밉게) 조종사가 잘못한 일인데, 승무원은 뭘 잘했다고 이래라저래라 명령한단 말인가. 객실 통로는 일어나 짐을 찾는 승객들에 의해 막힌다. 자리에 앉아있던 승객도 회의감이 든다. 상황이 이런데, 내가 언제부터 공중질서를 잘 지켰다고, 내가 뭘 그리 잘났다고 얌전히 지시를 기다리는가. 귀중한 추억이 담긴 짐을 두고 갈 순 없다. 객지에 나왔는데 그래도 여권은 챙겨가야 하지 않을까


조종석도 충격으로 책자가 흩어졌다. 비상대피 점검절차를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1분 뒤 비상 대피 절차를 마치고 대피 명령를 내린다. 승무원은 비상구를 열고 슬라이드를 펼친다. 항공기를 괴롭힌 윈드시어가 여전히 불고 있다. 좌측 1번 슬라이드는 고정장치가 풀려 분리되었다. 우측 1번 슬라이드는 유도로 표지판에 찢겨 바람이 새어나갔다. 좌측 2,4번 슬라이드는 기체에 바싹 붙어버렸다. 좌측 3번과 우측 2번은 연기에 막혀 쓸 수 없다. 우측 3번은 펼쳐지지 않았다. 우측 4번을 펼칠 승무원은 승객들의 소음 때문에 탈출 지시를 듣지 못했다. 객실 안은 대혼란 상태다. 기체 후미 3개의 비상구로 282명의 마음 급한 승객을 대피시켜야 한다.


소방차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현장 지휘가 체계적으로 내려지지 않았다. 각 소방차는 각자 알아서 눈앞에 보이는 화재를 진압한다. 랜딩기어에서 발생한 화재는 방치된다.


승객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짐을 들고 내리려는 승객과 아이를 잃어버린 승객이 길을 막는다. 보잉 767의 비상대피 제한 시간은 90초다. 에미레이트 521편의 승객은 7분이 걸린 후에 모두 내렸다. 승무원도 내렸지만, 기장과 부기장, 사무장에게는 마지막 의무가 남아있다. 7세 소녀가 나오지 못했다고 한 부모가 있었다. 조종사와 사무장은 호흡보호장비 PBE를 쓰고 객실을 헤맨다.


기장: 객실에 남은 분 있습니까?


콜록. 콜록.


사무장: 제 말 들립니까?

기장: 아무도 없습니까?

기장: 아무도 없습니까?


객실에는 자욱한 연기와 열기가 감돈다.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소녀는 진작에 대피해 부모와 함께 있다.


희생

랜딩기어의 화재는 점점 커져 중앙 연료 탱크로 번졌다. 연료탱크는 큰 폭발을 일으키며 터진다. 오른쪽 날개의 15미터 길이 패널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추락한다. 소방관 한 명이 파편에 맞아 현장에서 순직했다. 기내에 남아있던 기장, 부기장, 사무장도 폭발 충격에 쓰러진다. 이제는 탈출할 수밖에 없다. 좌측 1번 출구 바닥에 깔려있는 슬라이드를 향해 뛰어내렸다. 기장은 마지막으로 객실을 돌아보고 기체를 떠났다.


탑승자 명단을 확인한 후 모두 탈출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승객은 가벼운 부상만 입었지만, 승무원 4명은 중상을 입었다. 소방대는 1명이 순직하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보잉 777은 튼튼한 내구성으로 추락에 가까운 동체착륙을 버텨내었다. 조종사는 TO/GA 비활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멀쩡한 기체를 추락시켰다. 착륙 직전 불어닥친 윈드시어를 감당하는 건 쉽지 않았다. 기장은 실수를 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목숨을 걸고 승객을 찾으며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소방팀은 괴물처럼 불타오르는 기체에 맞서 승객들의 목숨을 모두 지켰다. 90초 내에 대피했다면 살 수 있는 목숨이 안타깝게 순직했다. 비상 대피 방법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고의 원인

최종 사고조사 보고서는 이 사건의 주요 원인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사고 원인

a. 충돌 3초 전까지 추력 레버가 아이들 상태였다.

b. 비행 승무원이 착륙 및 복행 중 비행계기를 잘 관찰하지 않았다.

c. TO/GA가 작동하지 않은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d. 비행 승무원이 운영 매뉴얼 복행 절차 중 엔진 추력 확인 단계를 누락해 엔진 추력을 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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