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옥수수밭의 기적. 우랄 항공 178편의 동체착륙.

by 구분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셰익스피어 희곡 제목이지만, 러시아에서도 흔히 쓰이는 속담이다. 코네츠 델루 베네츠. (Конец — делу венец.)


2019년 8월 15일. 우랄 항공 에어버스 A321은 버드 스트라이크를 당했다. 동력이 끊어진 기체는 옥수수밭에 착륙하기로 한다. 활주로가 아닌 곳에 동체착륙해서 233명 모두 살아남았다. 허드슨 강의 기적 못지않은 옥수수밭의 기적이다. 푸틴은 조종사들에게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한다. 안타깝게도, 이 대단한 업적을 조사한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아 사연이 알려지지 않았다. 3년 뒤, 텔레그램으로 조사보고서가 유출된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콥스키 국제공항

2011년. 러시아의 저가 항공 시장은 급성장한다. 푸틴은 모스크바에 네 번째 민간 공항을 열기로 한다. 모스크바 남동쪽 35km, 라멘스코예 공항이 주콥스키 국제공항으로 변신한다. 구 소련 시절 다양한 군용기 프로토타입과 우주왕복선 부란을 실험하던 곳으로 무려 4.6km 길이의 활주로가 있다. 지금도 어지간한 항공덕후라도 알아보지 못하는 특이한 기체들이 주기되어 있다. 유사시 회항할 공항으로 이보다 나은 옵션이 있을까.

01.png

2016년 연간 400만 명을 처리할 수 있는 주콥스키 국제공항이 개항했다. 주콥스키는 항공기 날개의 양력을 설명하는 이론인 쿠타-주콥스키 정리로 이름이 남은 소련의 물리학자이다. 아에로플로트 자회사로 시작한 우랄 항공이 주콥스키 공항을 거점으로 쓰기로 한다. 우랄 항공은 러시아 내에서는 안전한 항공사로 알려져 있다.


우랄 항공 178편

2019년 8월 15일. 새벽 4시 31분. 우랄 항공 에어버스 A321이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 목적지는 2014년 러시아의 새 영토가 된 크림 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이다.


기장. 41세. 다미르 유스포프. Damir Yuspov. 비행시간 4,275시간. 지난해 기장으로 승급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32세 나이에 비행학교 입학해 늦깎이 조종사가 되었다. 러시아에서 변호사 수익은 월 700~2000 달러, 이에 비해 대형 항공사 기장은 4000~8500 달러로 기장 수익이 훨씬 더 높다. 유스포프 기장의 경력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비행시간은 에어버스 A320으로 얻었다.


부기장. 23세. 게오르기 무르진. Georgy Murzin. 비행시간 780시간. 아직 입사 1년이 안 된 신참이다.


객실 승무원 5명. 승객 226명. 모두 233명이 탑승했다. 기체는 기령 15년의 A321이다. A321은 보잉 757과 경쟁하기 위해 A320의 크기를 키운 기종이다. 연료 효율, 저렴한 유지비, 정비 편의성을 내세워 시장에서 승리하고 757을 은퇴시켰다.


이륙 브리핑

대부분의 사고는 이륙과 착륙 중 일어난다. 이륙 전 브리핑에서는 이런 상황을 정리해 둔다. 이륙 중 엔진 고장이 일어나는 것은 흔하진 않지만 일어나는 일이다.


기장: 이륙 결정 속도를 넘어선 이후엔 이륙을 진행할 거고. In case of GO, continue takeoff.

기장: 고도 800피트 이전에는 ECAM 조치를 취하지 말고, 기어만 올리고. No ECAM actions before… eight hundred, except gear up,

기장: 엔진이 안정된 이후에 고도를 유지하면서 처리하자. When engine secured, push to level off.”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 에어버스 기체에서는 중앙 모니터에 처리할 경고와 주의, 권고가 모두 나온다. 이걸 처리하는 게 ECAM 조치다.

02.png

활주로에 다가가다 보니 창밖에 갈매기가 보인다. 드문 일은 아니다.


기장: 오늘은 새가 거의 없네. 그렇지? There are, there are hardly any birds there, no?

부기장: 네. 거의 안 보이네요. Yeah no, hardly.

기장: 안 보여? 저기 한 무리 날아가잖아. Hardly any? But some kind of flock is flying there.

부기장: 어. 뭐가 날고 있네요. Ah, well, there something’s flying.

기장: 아니. 거기 말고 활주로 위에 말이야. No, I mean on the runway.

부기장: 으… 활주로 위에는 안 보이는데요. No, there are hardly any on the runway.


부기장에게는 활주로의 새떼가 보이지 않았다. 보여도 달라지는 건 없다.


기장: 그럼 됐어. 가자. 이륙 준비 완료. That’s it, let’s go. We’re ready for takeoff.

부기장: 178편. 이륙 준비됐습니다. Sverdlovsk-178, ready for takeoff.

타워: 178편. 12번 활주로에서 이륙 허가합니다. 조류활동이 있습니다. E-178, Runway 12, cleared for takeoff, isolated bird activity.

부기장: 12번 활주로에서 이륙 허가받았습니다. Runway 12, taking off, Sverdlovsk-178.


조류 활동 경고가 있지만, 특이한 일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밥 먹었는지 묻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다. 이 지역에 사는 갈매기는 유럽 재갈매기와 카스피해 갈매기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큰재갈매기, 재갈매기, 괭이갈매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몸무게는 1킬로에서 1.6킬로 정도 나간다. 우리가 치킨으로 소비하는 10호 닭의 도축 전 무게와 비슷하다. 가창오리는 600그램에서 1.3킬로로 한 체급 작다.


조류 충돌

추력 레버를 올린다. 활주로가 매우 길기 때문에 최대 추력이 아니라 FLEX 추력으로 낮춰 이륙한다. FLEX 추력을 쓰면 엔진 수명도 길어지고 연료도 아낄 수 있다. 소음도 줄어든다. 이륙 활주를 하다 보니 또 새가 보인다. 속도 60노트.


기장: 제발, 새야 빨리 가라. 으이그. Come on, fly past, bird, blyad.

부기장: 100노트. 100 knots.

기장: 확인. Checked.


새들이 다가온다. 다가와도 조종사가 새들에게 할 수 있는 건 욕뿐이다.


기장: 이 빌어먹을 새 새끼. 블럇! Yobannyy v rot blyad,


기장은 갈매기에게 욕을 퍼붓는다.


부기장: V1.


이제 이륙 중단할 속도를 넘었다.


부기장: 로테이트. Rotate.


이륙이 시작된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갈매기 서른 마리가 지나간다. 최소 15마리의 갈매기가 기체와 부딪혔다. 왼쪽 엔진에는 세 마리가 충돌한다. 오른쪽 엔진에는 한 마리가 빨려 들어간다. 고도는 3피트. ECAM에 경고가 나온다.


ECAM: ENGINE 1 REV UNLOCKED 1번 엔진 역추진장치 해제


이륙 중인데 1번 엔진 역추진장치 해제? 센서 고장으로 엉뚱한 경고 메시지가 나왔다. 훈련 상황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경고다.


부기장: 클라임. Climb.


상승이 시작되었다는 정상적인 콜아웃은 포지티브 클라임이지만 입이 얼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포지티브 클라임과 클라임. 한 단어가 빠졌을 뿐이지만, 조종사는 포지티브 클라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다음 절차 ‘기어 업’을 외치게 된다. 수도 없이 반복하며 몸에 익힌 절차다.

03.png

기장도 새들의 충격에 얼이 나갔는지, 기어를 올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왼쪽 엔진 출력이 떨어지며 기체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부기장 증언: 그 순간 저는 엔진 고장 상황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후엔 그냥 잊어버렸습니다.


아직 오토파일럿을 켜지도 못했다. 엔진 고장 시 표준 절차로는 오토파일럿부터 켜야 한다. 좌우 엔진의 추력이 다르기 때문에 기체는 한쪽으로 기우는 동작, 즉 반시계 방향으로 요잉을 하고 있다. 기장은 러더 페달을 밟아 방향타를 움직여 자세를 잡는다. 계속 방향타를 밟지 않으려면 러더 트림을 움직여 보정을 해야 한다. 오토파일럿을 켜기 전엔 반드시 러더 트림을 해주어야 한다. 오토파일럿을 켠 후 러더 페달을 일정 이상 밟으면, 에어버스의 비행컴퓨터는 조종사가 수동으로 비행하려는 것으로 보고 오토파일럿을 해제한다. 기장은 러더 트림을 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동체 착륙

속도는 183노트까지 올라갔다가 서서히 떨어진다. 추력이 떨어지자 비행 컴퓨터는 기수를 내려 속도를 높이려 한다. 왼쪽 엔진은 공회전 상태에 가깝다. 오른쪽 엔진도 센서 고장으로 N1이 88%로 떨어졌다. 고도는 300피트.


기장: ECAM 조치 시작해. ECAM actions.

부기장: 엔진 1 역추진 잠금 해제. Engine one reverse unlocked.

부기장: 1번 레버 아이들로. 추력 확인? Thrust lever one idle. Confirm thrust?

기장: 확인. Check.


이때 오토파일럿이 해제된다. 러더 페달을 깊게 밟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고 메시지가 ECAM에 쏟아진다. 현재 고도는 313피트, 약 95미터.

04.png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랜딩 기어를 접어 항력을 줄인다. 둘째 TO/GA를 눌러 추력을 높인다. 기장은 두 방법 대신 조종간을 당겨 기수를 든다. 이러면 속도가 느는 게 아니라 실속에 빠진다.


기장: PAN PAN PAN. 스베들롭스크. Pan-pan Pan-pan Pan-pan Sverdlovsk.


팬 선언하는 동시에 러더 페달에서 발을 뗀다. 기체는 왼쪽으로 돌아간다. 고도는 290피트. 기장은 TO/GA를 누른다. 1초가 아쉬운 순간이다. 한번 잘못 판단하면 두 번의 기회가 없다. 2번 엔진이 TO/GA 추력으로 올라가다 이상 현상이 생긴다. 2번 엔진에도 손상이 있었다. 팬블레이드의 손상으로 공기 흐름이 역류해 엔진 서지가 일어난다. 엔진에서 진동과 폭발음이 들린다.


기장: 오토파일럿이 꺼졌어. Autopilot off.

기장: 속도 확인해. Watch speed.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부기장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기장: PAN, PAN, PAN. 스베르들롭스크 178. 원 엔진 페일. Pan-pan, pan-pan, pan-pan, Sverdlovsk one seven eight, one engine failure!

기장: 회항할 거라고 말해.


고도는 240피트. 속도는 152노트. 활주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부기장: 고도가 떨어집니다. Altitude, altitude.


기장은 기수를 든다. 기수각 12.5도. 무리한 조작이다. 에어버스의 비행 컴퓨터는 실속을 막으려 기수를 낮추려 한다. 기장은 이에 맞서 기수를 15.5도까지 당긴다. 비행컴퓨터가 허용한 한계치다. 더 이상 당겨도 기수각은 증가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이 없었으면 바로 실속에 빠졌을 것이다. 조종석은 온갖 경고음, 진동, 서지로 인한 폭발음으로 가득하다.


고도 120피트. 기장은 속도를 증가할 수 있는 두 번째 행동을 취한다. 랜딩기어가 올라간다. 그렇지만 정신은 바짝 얼어 풀리지 않는다.

05.png

충돌방지자세를 취하라는 방송을 할 여유도 없다. 기장은 조종간을 최대한 당길 뿐이다. 에어버스의 비행컴퓨터는 그 조작을 무시하며 기수각을 15.5도로 유지한다. 기체속도는 136노트.


기체는 옥수수밭에 동체착륙한다. 12번 활주로 종단에서 4.9km 떨어진 지점이다. 어쩌다 보니 앞에 옥수수밭이 있었다. 덜 익은 옥수수를 밀며 도랑을 지나간다. 오른쪽 엔진 후류에 휩쓸린 옥수수는 뒤로 넘어진다. 랜딩기어부터 엔진 나셀까지 파편이 떨어져 나간다. 350m를 동체로 이동한 후 멈춰 선다.

07.png

승객들은 슬라이드를 타고 대피한다. 탑승자 233명 모두 살았다. 불시착 중 다친 사람 23명. 비상대피 중 다친 사람은 4명. 206명은 멀쩡했다. 그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로 떠난 사람도 있었다. 중상자는 부기장을 포함해 3명뿐이다. 부기장은 어쩌다 흉추를 다쳤을까.


부기장 증언: 아마 한 손으로 바이저를 짚었을 겁니다. 왼손인지 오른손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주 2216편 마지막의 손동작도 비슷한 이유인지 모른다.


허드슨강의 기적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새와 부딪혀 엔진이 멎었고, 불시착했는데 모두가 살았다. 요약을 잘하면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된다. 중간 과정을 어떻게 생략하느냐에 달렸다. 엔진 하나가 80% 정도 기능해서 정상적으로 착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략하면 이야기가 비슷해진다. 어쨌든 기적은 기적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러시아에서 도치법이 발달된 이유일까.


푸틴은 사고 하루 만에 조종사에게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한다고 결정했다. 일단 결론부터 정해졌다. 팍팍한 세상, 영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사고 조사

러시아에서도 공항반경 15킬로 내에는 쓰레기 매립장 시설이 금지되어 있다. 새를 유인하기 때문이다. 갈매기는 대표적인 청소 동물로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는다. 주콥스키 공항 주변에는 불법 쓰레기 매립시설이 여러 군데 있다. 2012년 한 불법 매립장을 폐쇄하려 소송을 걸었지만, 재판에서 매립장이 이겨 폐쇄되지 않았다. 불법 매립장이 법으로 이기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쓰레기에 새가 유인되는 게 어쩔 수 없다면, 새들이 쫓아내야 한다. 주콥스키 공항은 전문적인 조류 방제를 할 예산이 없었다. 인건비를 아끼려 새를 쫓는 소음 대포를 자동으로 발사한다. 새들은 금방 소음에 적응했다. 새와 충돌하는 건 공항의 일상적인 일이 되어 2019년 8월에도 두 차례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 조종사가 새들에게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우랄 항공 178편 기장처럼 새들에게 욕하는 것뿐이다.


1번 엔진에는 3마리의 새가 빨려 들어갔다. CFM-56 엔진의 인증 요구 조건은 새와 충돌 시 엔진이 정상 가동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새 한 마리와 충돌 시 화재가 발생하거나, 분해가 되지 않으면 된다. 엔진은 기준을 만족시켰다.


사고조사위는 충돌 20초 내에 메인기어를 접었다면 고도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엔진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다면, 공항으로 회항해 4.6킬로미터의 활주로로 돌아와 정상적으로 착륙했을 수도 있었다. 조종사들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절차에 있는 기어 올리기가 한참 동안이나 진행되지 않았고, 충돌 5초 전에야 기어를 올리게 되었다.


조종사가 무능했던 것일까. 조종사들은 훈련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설리 기장에게는 조류 충돌부터 비상착수까지 4분의 시간과 3200피트의 고도가 있었다. 우랄항공 178편의 경우 90초의 시간과 313피트의 고도뿐이었다. 조종사들은 러시아의 다른 조종사처럼 휴가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기장은 입사이래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우수한 조종사라도 피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조류충돌이라는 충격을 받으면 패닉에 빠져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많은 항공 사고가 경험 많고 우수한 기장이 특별한 상황에 빠졌을 때 일어난다. 어쨌든 기장은 233명을 살렸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러시아 항공사고조사위는 조사과정에서 러시아 항공청과 갈등을 빚었다. 항공청은 끊임없이 사고조사를 방해했다. 짜르가 인정한 영웅을 진실이라는 비겁한 무기로 모욕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사고조사보고서가 발표되는 일은 없었다. 조사 결과는 누군가 손이 미끄러졌는지 텔레그램을 통해 우연히 유출되었다. 항공사고가 은폐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 은폐에 이골이 난 러시아조차 다 감추지는 못한다.


유튜브에서 보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에미레이트 521편의 두바이 공항 동체착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