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낚는 법
고등학생 때까지 아빠는 나의 삶의 너무나 작은 부분이었다. 저녁식사 때만 만날 수 있고, 나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용해 주셨고, 밤늦을 때 나를 데리러 오시기도 했다. 그러나 감정적인 얘기보다는 사회정세, 경제에 대한 의견들만 얘기해서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 당시 과외를 하던 친구도 별로 없었는데 서울대 다니는 친척오빠에게 과외를 하게 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과한 금액이었다. 그러면서 아빠가 내게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선희야, 아빠가 네게 유산을 남겨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엄마 아빠 아래 있을 때 많이 배워라. “
나는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 주위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가장 똑똑한 그 오빠는 긍정적이고, 감정적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본인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성격은 불필요한 감정소모와 걱정이 많았는데 그 오빠와 함께 있으며 많이 바뀌게 되었다. 성적도 많이 향상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 우리 반 일등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인서울 대학교에만 가면 모두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재수를 하고, 어학연수를 하고 대학 졸업 후 4년을 경찰시험 준비하다 낙방하고, 방에서 낮내내 드러누워 있었다. 간신히 번역회사에 취업했다가 일 년 후 아빠와 함께 1년간 일했다. 그리고 애 셋을 낳고 12년간 무직으로 살았다.
12년이 지나고 중국어 화상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드디어 일할 수 있게 된 한 달 후 아빠는 췌장암이 걸린 걸 알게 되었고 우리에겐 6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그때 그 과외비가 교육비가 투자라면 아빠는 쫄딱 망한 것이다. 나 때문에.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내가 스스로 벌어본 돈이 천만 원도 안되었다. 부모님 여행을 보내드려 본 적도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한 달 생활비가 100만 원이라 아빠 선물 한 번 제대로 사드린 적도 없었다. 생신 조용히 지나가면 안 되나 생각하는 찌질한 녀석이었다.
그런 내게, “오빠와 네가 사회에 자리를 잘 잡아서 너무 기쁘다”라고 해주신 아빠.
“네가 셋을 낳은 건 너무 잘했어”라고 얘기해 주신 아빠.
그의 기억이 다 잊혀 버리기 전에 꼭 이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