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딸
우리 아빠는 나를 금딸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귀했는지. 나는 그 사랑을 받아도 감사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늘 내가 받아야 할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만들어 선물해 드렸다. 나는 손재주가 없어서 다른 아이들 것보다 더 작고 엉망진창이었다. 아침에 가슴에 달아 주었던 카네이션을 아빠가 퇴근길에 달고 왔을 때 나는 얼마나 놀랐던가. 부끄러워서 당연히 떼고 오리라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훈장을 받은 것처럼 당당하게 달고 다닌 아빠에게 내가 오히려 놀랐다.
고등학교에 가서 어느 한 어버이날은 유부초밥을 만들어 드렸다. 아빠는 그 접시를 보자마자 접시 채 들고 사진관으로 갔다. 당시 가족사진만 찍던 사진관 아저씨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유부초밥을 가족사진 크기로 커다랗게 액자로 만들어 오셨다.
나의 작은 행동들을 너무 과하게 칭찬해 주셨다.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딸. 나는 세상에 나가서도 그런 대접을 받을 줄 알았다. 그렇게 컸으니 이기적인 게 당연하고 상대를 배려하기 어려웠는데. 대학 졸업 후 면접 보러 가서 내가 온 것만으로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가정과 사회의 온도차가 너무 컸다. 면접 보는 족족 탈락한 것은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그때도 아빠는 내게 와서 얘기해 주셨다. “너 때문만은 아냐. 지금 경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아” 나는 그 말에 적지 않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고 몰래 부모님이 뽑은 새 차를 끌고 연습한다며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두어 바퀴 지하 주차장을 돌고 주차하려는 순간 앞으로 나갔다가 코너에 문이 박혔다. 제대로 넣으려고 앞뒤를 오가는 사이 문짝 하나를 완벽히 망가뜨렸다. 새 차에 문짝을 완벽히 망가뜨려 놓았는데 엄마 아빠는 질책 한 마디 하지 않으셨다. 돈 만 해도 몇 백만 원이 들어갔을 텐데.
나 또한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당시에는 느끼지도 못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생각해 보니 얼마나 철없고 대책 없는 녀석인가. 하며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아빠의 장례식 날 미국에서 돌아온 오빠가 나에게 처음으로 물었다. “너 괜찮아? 아빠가 널 유독 좋아했잖아” 나는 왜 그날까지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