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게, 아빠!

좋았던 그때

by 소하

모든 것이 조금씩 낳아졌다. 88 올림픽 굴렁쇠 소년을 본 이후였던가. 아빠는 올림픽 주화라며 번쩍이는 은빛 주화를 보여주셨다. 동그랗고 번쩍이는 뭔가가 희망을 가져온 듯 보였다.


우리는 여전히 반 지하집들을 2년에 한 번씩 이사 다녔다. 주방에 가스 곤로를 쓰고 어두침침한 집만 돌아다녔다. 나중에 아빠는 병원에서 섬망이 왔을 때 불이 어둑한 자리를 배정받자 “우리 왜 또 지하로 왔어? ”라며 싫어하셨다 했다.


비가 많이 내렸던 어느 날 정신없이 물을 퍼냈다. 또 우리는 늘 어두침침한 곳에 있었는데 친구네 집에 놀러 가자 반짝이고 깨끗한 나무바닥이며, 문간에 매달린 그네에 놀랬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어린 내가 처음으로 대했던 부의 크기를 아빠는 평생 느끼며 짊어지며 가셨던 걸까.


내 어린 시절 사진들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뒤에 있는 배경은 초라하기 그지없는데 내 옷은 공주님 옷들 뿐이라는 거다. 멋쟁이 엄마 이기도 했지만 밖에 나가 기 죽지 말라고 더 신경 써준 것이다. 소풍날이면 아빠도 내가 나갈 때 과하다 싶게 많이 용돈을 주셨다. “없어서 주눅 들지 마. ”


나의 생활을 감춰. 가난을 감춰. 무언의 메시지들을 조금씩 보냈다. 친구를 만나도 음식값 더 내려하고 돈을 펑펑 쓰려하는 나는 그때의 보살핌의 따뜻한 메시지가 왜곡되어 허세로 변해버린 걸까.


그러나 대부분은 돌아보면 찬란하고 따뜻한 기억이다. 함께 설날 친척집에 가면 엄마들은 모두 모여 음식을 만들고 아빠 들은 티브이를 틀어 놓고 정치 이야기며 사회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따뜻함.

여름엔 텐트를 짊어지고 가서 물놀이 후 바닥에서 잠이 들어 허리가 아팠던 것

약수물을 뜨러 다니며 오색약수를 처음 맛보고 물의 달콤함과 짭짤함에 놀랐던 마음

겨울에 눈놀이 하고 오면 절절 끓는 안방에 누워 간식을 맛본 기쁨


온통 다 따뜻하고 좋은 기억들이 나를 감싸준다.

그 하루로 다시 그 무수한 날들 중 하루로 다시 한번만 돌아가고 싶다.


나는 더 그 순간을 즐겼을 텐데

짜증 내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따뜻한 말과

따뜻한 행동으로

사랑을 조금 더 주고받았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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