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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식당> (창비, 2013) 46p

by 김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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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이 처음인 듯 숨기는군

돌아갈 데가 몸밖에 없는 누군가의 기억일 거야

서로의 끝이 되어두자

네가 나의 전생이라도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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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거부하려 하지 않아

아무도 견디려 하지 않지

아직도 이중부정을 긍정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어

이중구속을 자유라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

내일을 태운 열로 오늘을 살고 있네

슬프다고 말해야겠네 나눌 게 혁명밖에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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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데서도 사람이 살더구나

그런 데서도 사람은 죽죠

좋아하는 사람은 있니

사람은 좋아하지 않아요

좋지 않은 생각이구나

사람은 나쁜 것들의 천국이잖아요

뭐가 그리 두렵니

당신의 사람이 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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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신까지 받아들여야 해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네

받아들임이란 본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것이네

덧없이 사무치는 건지도 모르겠네

본시 생이란 더없이 덧없는 데서 덧나는 것이네

무화과의 꽃 같은 말이군

자네가 받아들인 건 누군가의 경악 같은 것일지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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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버리러 가

꼭 그래야겠어?

그래야겠어

너를 알아볼 수 있을까?

사람들이 우리보고 뭐라 그러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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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거나 감정을 갖지 말아요 외면하지도 주시하지도 숨을 고르지도 말아요 오늘 물이 잔잔히 끓는 건 누군가 나를 잊었다는 거

잘못 보냈습니다


……숨을 계속 쉬어줘 내 숨을 줄게 내 숨으로 숨을 쉬어줘 내 숨을 다시 불어줘 내가 모르는 나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 내가 몰랐으면 하는 나

잘못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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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일어난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까? 한번 일어난 일은 끝없이 일어납니까? 세상에서 완전한 건 시간뿐입니까? 완전히 사라지는 건 시간뿐입니까? 아는 사람들은 타국으로 떠났거나 타계했어요 어떤 시간이 더 필요할까요?

모르겠어요 이 세계만으로는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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