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의 추억
11월에 걷는 가로수길은 참 낭만적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잎이 떨어져
거리에 수북수북 쌓인다.
발에 느껴지는 낙엽의 촉감이 사랑스럽다.
무심코 앞을 보니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미소를 띠며 걸어온다.
손끝엔 노란 은행잎 몇 개가 팔랑거린다.
주름 투성이 외모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감성이다.
그 아주머니를 보며
나도 잠시 나이를 잊기로 했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이파리를 주워 들고
걸으니,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플라타너스 잎을 흔들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플라타너스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를 누비며
커다란 잎을 주우러 다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꼬챙이를 만들어
커다란 이파리를
한가득 꿰어서 집에 가지고 갔다.
엄마가 아궁이 불쏘시개로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나뭇잎 모으는 데 열중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하긴 그 당시 시골에서 무슨 놀잇감이 있었을까.
그저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나는 언니, 오빠 따라서 메뚜기도 잡고,
개구리도 잡고,
미꾸라지도 잡고,
자연이 놀이터였다.
언니가 귀찮다고 떼놓고 가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나뭇잎 줍는 거였나 보다.
낙엽 지는 거리를 걸으며
잠시 동심에 빠져본다.
신작로에 일직선으로 끝없이 늘어서 있던
플라타너스가 마냥 좋았다.
플라타너스는 병충해에도 강하다고 한다.
한여름에도 싱싱한 이파리 펄럭이며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는 고마운 나무다.
거기다가 공해 물질을 흡착한다니
얼마나 착한 나무인가.
가로수로는 딱 어울리는 나무 같다.
그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구 푸대접을
받기 일쑤이다.
키가 쑥쑥 크고 이파리가 너무 넓어 상가 간판을 가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도로변 상가에선 달가워
할 리가 없다.
그러니 자라지 못하도록 가지를 쳐내거나,
아예 통째로 베어버리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열매가 맺히지 않는 은행나무 등 다른 나무에 밀려나는 플라타너스.
이러다 가로수 대열에서 영원히 사라질까 염려스럽다.
어쩌면 시골 신작로에 있어야지만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플라타너스 이파리 손에 들고
새록새록 추억에 젖어드는,
늦가을 어느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