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무심함이 필요해
이따금 동네 중국 식품점엘 간다.
이질적이고 낯설어서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은근히 즐긴다.
말없이 가게 구경을 하고 나오기도 하고 양고기와 오리알을 사기도 한다.
시장 골목 초입에 있는 그 가게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문이 열려 있어 이용이 편했다. 주인 여자는 40대쯤 되어 보였다. 내가 들어가면 영혼 없는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한마디 하고 TV를 들여다봤다.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중국말 일색이었다. 어떤 땐 남편이랑 저녁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가게 안쪽 진열대 사이로 쪽문이 있는 걸 보니 안집과 연결돼 있는 것 같았다.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나는 나에게 관심 두지 않는 가게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그저 사고 싶은 물건 골라 내밀면, 주인은 카드 받아 들고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계산을 마친다. 그러면 서로의 볼일은 끝나는 거였다.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만족하는 침묵의 질서라고나 할까.
도시의 삶에는 적당한 무심함도 필요하다. 매일 스치는 수많은 사람과 일일이 관계를 맺을 필요도, 그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는 자유. 나는 그 자유와 익명성을 존중해 주는 평온한 공간이 좋은 거다.
허나 어차피 타인, 그런 자유가 영원히 보장되리라는 기대는 안 한다. 평온한 관계에 균열이 오기도 하니까.
한 번은 사간 오리알 두어 개가 상해 보였다. 바꾸러 가기엔 번거롭고 먹기는 찜찜해 그냥 버렸다. 한 달쯤 지나 다시 가게를 찾았을 때, 상한 오리알에 대한 억울한 마음이 슬몃 상기됐다.
오리알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거 지난번에 사 갔는데 2개는 상했던데요." 항의라기보다 지나가는 말투처럼 혼잣말에 가까웠다.
주인 여자가 흘끗 쳐다보곤 다시 드라마에 시선을 돌렸다. 예쁘장한 눈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순간 나는 머쓱했다.
'어머, 그러셨어요?' 하는 의례적인 호들갑이나, '먹어도 괜찮아요. 원래 그런 맛이에요' 같은 변명이라도 하길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어색하고 썰렁한 분위기가 잠시 스쳤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구차한 말 섞는 것보다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남는 게 이 가게와 나의 암묵적인 규칙이니까.
나는 서둘러 감정을 수습하고 나왔다.
한동안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주, 다른 일로 그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기왕 온 김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골 메뉴 오리알을 집어 들자니 해결되지 않은 불안감이 스멀거렸다. 이리저리 살펴보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건 괜찮으려나..."
그때, 계산대 쪽에서 차가운 한마디가 날아왔다.
"지난번에도 그 말 하더니."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손에 든 오리알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주인 여자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내가 언제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그동안 무심한 듯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있었던 걸까?
그건 관심도 친절도 아니었다. 무심함의 탈을 쓴 감시였다. 마치 성가신 손님 목록에 올려두고 차갑게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원했던 ' 무심함'은 서로를 향한 존중과 보이지 않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였다. 하지만 그녀의 무심함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경계심이라는 불친절일 뿐이었다. 불쾌했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이젠 그 가게 다신 가지 않을 것 같다. 오리알은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적당한 무심함이 있는 공간을 찾아다닐 것이다. 다만 이제는 안다. 진짜 편안한 관계란 서로를 모르는 척하는 냉담함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기에 섣불리 묻지 않는다는 것을. 배려하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섬세한 온기 위에 있다는 것을.
무심함에도 온도가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차가운 무관심이 아니라, 따뜻한 무심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