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사의 적정선은 어디까지일까

단톡방에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by 정성희


친구에게서 부고 알림이 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결혼 후 40년 가까이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친구였다. 부고장에, 헌신으로 지새웠던 외며느리라는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여고 동창 일곱 명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을 떠올렸다.




'이 부고 소식을 모임방에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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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마음 맞는 친구끼리 여행하며 나이 들자는 취지로 나와 친한 친구가 만든 톡 방이다. 친구들은 계절마다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나는 아직 여행 일정에 동참한 적은 없다. 내가 처한 상황 탓도 있지만, 사실 몇 날 며칠을 온전히 함께 보낼 만큼 딱히 마음이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임에 적극적이지도 않으면서 단톡방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두 친구 때문이다. 하필 그중 한 친구가 상을 당한 것이다.


아무래도 여행 모임을 주선했던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순서일 것 같아 연락을 취해보았다.


"그건 안돼, 우리 모임은 애경사는 챙기지 않기로 정했어. 오로지 여행을 목적으로 한 거라 나는 못 들은 걸로 할게."


친구는 단호했다. 너무 냉정한 반응이라 섭섭함이 밀려왔다.


물론 여행 얘기를 나누는 모임방에 부고를 띄우는 건 마뜩잖다. 그렇지만 적어도 "고생 많았어", "힘내"라는 위로 한마디 건네는 게 그나마의 우정 아닐까 싶었다.


나에게 여행의 묘미란 어느 곳을 가느냐의 목적지가 아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여긴다. 여행을 다닐 정도로 마음 나누는 친구라면, 삶의 무거운 순간에도 서로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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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애경사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어떤 사람은 경사는 생략해도 애사만큼은 빠짐없이 챙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온 횟수에 맞춰서 되돌려준다는 원칙을 고수하기도 한다. "나에게 한 만큼만 챙긴다"는 공평함의 원칙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 마음이란 게 참 희한해서 늘 이 원칙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친밀도가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업적인 관계 등 다양한 이유로 원칙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자녀 결혼도 없고 이젠 장례 치를 부모도 안 계시니 앞으로 주고받을 관계 자체가 없다. 그저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상대에게 정을 줄 뿐이다.


어떤 방식도 옳거나 틀리다고 단언할 수 없다. 때문에 내가 독단적으로 모임의 분위기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경사를 챙기자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부조금에 부담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내 기준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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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 애경사는 관계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진심일 거고, 또 어떤 이에겐 그저 부담스러운 의무로만 다가올 것이다. 어쨌거나 나이가 들수록 애경사 문제는 참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암튼, 각자 나름의 공평함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으니. 나는 단톡방에 소식을 올리지 않았다.


내가 리더도 아닌데 독단적으로 모임의 성격을 바꿀 순 없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리도 없다. 대신 나는 개인적으로 조문을 갔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애경사를 챙기지 않는 행위를 냉정하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 또한 하나의 관계 방식임을 인정하게 됐다. 모든 관계에 동일한 무게를 요구할 수는 없다. 가벼운 관계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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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사의 적정선은 사람마다, 관계의 성격마다 다르게 설정된다. 누구의 방식이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이 들어 비로소 배우는 지혜인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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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내 기준을 보편적 기준이라고 착각한다. 애경사를 꼭 챙겨야 한다거나, 반대로 아예 무시해도 된다는 식의 흑백논리. 하지만 관계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자기 방식대로 관계를 이어가면 된다. 중요한 건 상대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애경사는 더 자주 더 무거운 짐처럼 찾아온다. 그때마다 우리는 고민할 것이다. 어디까지 챙겨야 하나,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나. 정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되,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말자. 그리고 남의 방식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누군가에겐 조문 한 번이 큰 부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나이 들어 배우는 어른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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