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0만 원 매출의 함정
야탑역에서 지인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마침 간 김에 순이 씨에게 들러 차 한 잔 마시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성남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순이 씨는 늘 바빴다.
통화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아 드문드문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연말도 됐고 해서 얼굴이 보고 싶었다.
조금 들떠서 전화를 했다. "순이 씨, 여기 야탑인데 좀 있다 가게로 갈게요." 그랬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이구, 내가 지금 강릉에 내려와 있어요. 못 봐서 섭섭하네요."
어느새 가게 문 닫은 지 한 달 됐다고 한다.
그 소문난 반찬가게를, 하루 매출 120만 원을 찍던 가게를 미련 없이 접었다는 것이었다.
순이 씨가 처음 반찬가게를 준비할 때 나는 의아했다. '아니, 60세가 넘은 나이에 왜 그 고생을 하려 하지? 순이 씨는 노동하지 않아도 풍족하게 살고 있는 중이었다. 두 자녀에게 아파트를 사주는 등 미리 배분해 주고도 아직 수십억 재력이 있었다. 그런데다 남편은 아직 월급 사장으로 현역이었다. 강릉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자기 집 놔두고 성남에서 가게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성남에는 딸이 살고 있다. 쌍둥이를 낳고 돌 지나 다시 출근하던 딸은 직장을 관둘 묘안을 짜냈다.
아파트 단지 내에 반찬가게를 차리면 아이들도 돌보면서 돈도 수월하게 벌 거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거다.
그래서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음식 정말 맛있잖아요. 그냥 묻히긴 아까워요. 나도 요리하는 거 너무 좋아하니까 우리 같이 반찬가게 해요."
사랑하는 딸이 졸라대니 차츰 순이 씨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순이 씨는 음식 하는 걸 좋아한다.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은근 설레기까지 했다. 곧바로 딸이 사는 아파트 상가에 세를 얻었다.
눈 높은 딸내미는 인테리어 비용에 과감히 1억을 들였다. 천장 다 뜯어내고 에어컨 설치하고 휴식 가능한 작은방까지 들였다.
이런저런 옵션이 아낌없이 들어가 근사한 매장의 모습을 갖추었다. 오며 가며 보던 시장의 작고 허름한 반찬가게와는 비교가 안되었다. 나는 그 상가를 아예 사버린 줄 알았다. 자기 소유 아니고서야 어찌 저리 무모한 투자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대단한 배짱이었다.
어쨌거나 가게는 오픈했고 대박이 났다. 반찬이 맛있다고 입소문이 났고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하루 매출은 거뜬히 120만 원을 찍었다. 명절이나 행사가 있는 날은 200만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고 성공한 가게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막상 남는 건 별로 없었던 거다. 아니, 남는 게 없을 뿐 아니라 온몸이 망가져갔다. 60 넘어 시작한 일은 매출로는 성공인 듯 보였지만, 1년의 삶은 실패였다.
순이 씨는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 넘어서까지 쉴 틈 없이 일했다. 반찬은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국산만 썼다. 구하기 어려운 건 남편이 도와주었다. 정선에서 고춧가루, 나물 등을 조달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기본 재료비가 많이 들었다. 알바비, 배달앱 수수료, 카드 수수료, 가게 임대료, 세금까지 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루 매출이 120만 원이면 많이 남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재료비 40%, 인건비 30%, 임대료와 각종 수수료 20%. 순이 씨 손에 남는 건 10% 남짓. 하루 12만 원 정도였다. 그것도 온몸을 혹사해서 번 돈이었다.
더 큰 문제는 몸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서서 일하고, 무거운 냄비를 들고, 절이고 볶고 조리를 하다 보니 온몸이 쑤셨다. 주말이면 병원을 찾아가 관절염 주사로 겨우 버텼다.
딸 집에서 기거하며 세 살 쌍둥이 손녀까지 봐줬다.
남편이 있는 강릉에도 내려가 일요일엔 교회 다니는 루틴을 놓지 않았다. 순이 씨의 관절은 가게와 육아와 주말부부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결국 가게를 접어야 했다. 도저히 몸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릉에서 전화 통화를 하던 순이 씨가 말했다.
"내가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후회스러워요. 돈 쏟아부어 가며 미친 짓 했어요. 딸도 생각을 잘못했다며 미안해하더구먼요."
순이 씨 모녀는 값진 경험 후에야 깨달았단다. 60 넘어서 하는 일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풍족한 노후를 두고, 건강을 갈아 넣으며 돈을 벌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어쨌거나 시니어에게 육체를 혹사하는 자영업은 위험하다. 생계가 막막한 상태가 아니라면 노동 영업보다는 다른 의미를 찾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숫자로 증명되는 성공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선택이어야 한다.
하루 120만 원 매출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고, 관절염 주사를 맞으며 버텨내야 한다면 말이다.
순이 씨네 가게는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 그냥 방치 상태라고 한다. 인테리어 권리금 등은 회수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1억을 들인 오픈 비용은 그대로 날린 것이다. 그런데다 만약 가게를 원상태로 복원하라 하면 어찌할 것인가.
그럼에도 순이 씨는 이제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엔 웃으며 여유롭게 일어난다. 마음과 몸이 안정을 찾은 것이다. 남편과 함께 산책을 하고, 손녀들이 보고 싶으면 부부가 성남으로 올라가고, 일본 온천 여행도 다녀온다.
"이게 맞는 것 같아요. 이제야 내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나는 순이 씨의 사례를 보며 노년 창업의 현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일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놀고 있으면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손쉬워 보이는 자영업을 시작한다. 카페를 하거나, 음식점을 하거나, 여타 장사를.
하지만 그게 정말 본인에게 합당하고 필요한 일일까.
특히 순이 씨네처럼 생계가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결코 건강과 삶의 질을 희생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어야 한다.
숫자로만 증명되는 성공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는 도구로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선택이어야 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병원행이 순서라면,
그게 설령 높은 매출을 올린다 해도 성공이라 볼 순 없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지금 60 넘어 무언가를 시작하려 한다면,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라.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매출이 좋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건강을 갈아 넣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다시 한번, 노년의 창업은 신중해야 한다. 특히 생계가 절박하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일하는 것과 일에 잠식당하는 것은 다르다.
순이 씨의 1년은 그것을 보여준 뼈아픈 교훈이다.
60 넘어서 하는 일은 삶을 위한 것이어야지,
삶을 희생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