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너였구나

자유 글 40 꼭지 프로젝트9

by 정성희


전철을 타고 오는데 어디선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났다. 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봤다.


하지만 그럴 만한 분위기의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핸드폰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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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미세먼지 때문인가.' '봄이라 하수구 냄새가 올라오는 건가.'


그럴듯한 이유를 몇 가지 떠올려 보며 전철에서 내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을 빠져나가는데도 그 냄새는 계속 따라왔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지나갔다. 나만 괜히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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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배낭을 열어보고서야 냄새의 주범이 내 가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방 속 비닐봉지 안에는 절인 무 한 개와 매실, 양파 절임 같은 밑반찬이 들어 있었다. 물기가 새어나와 가방 바닥이 살짝 젖어 있었다. 전철 안에서 내내 범인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내가 바로 그 범인이었던 것이다.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여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반찬과 무김치를 훨씬 더 많이 받아 들고 왔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전철에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 시간 가까이 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허벅지가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게 체온과 닿아 그러려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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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공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몇 걸음씩 물러나면서 내 발 쪽을 힐끔거렸다.


나는 가방이 시야를 가려 발밑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발을 오므리는 걸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방을 조금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보았다.

마치 누군가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퍼져 있었다. 내 가방 밑을 보니 척척했고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웃음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너무 당혹스러워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사방이 막힌 전철 안에서 도망칠 곳도 없었다. 모르는 척하자니 물은 계속 퍼지고 있었고, 해명하자니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다. 대놓고 질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곤혹스러웠다. 내 허벅지 위 청바지는 물기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언뜻 보면 오줌을 못 참고 실수한 모습 그 자체였다. 일어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황.


나는 가방 앞 지퍼를 열고 있는 휴지를 다 꺼내 슬그머니 가방 밑으로 떨어뜨렸다. 바닥에 대충 깔고 발로 밟으며 가슴까지 후끈후끈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치듯 전철에서 내려왔다. 휴지를 주워 나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이런 영상이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철에서 오줌 싸고 도망간 뻔뻔한 나이 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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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그날도 우리는 오래 앉아 있었다. 차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주언니는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거 가져가, 이것도. 거절할 틈도 없이 내 가방 속으로 봉지들이 하나씩 들어갔다.


"아니 이 무거운 걸 가지고 왔어요? 그럼 진작 주지 팔 아팠을 텐데."


"괜찮아. 사 먹으면 별거 아닌데 내가 농장에서 직접 키운 거라 맛보라고, 그러니 암말 말고 가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미안해할까 봐 너스레를 떨어 보였다.


주언니는 세 살 위의 선배 작가다. 7년 전 블로그에서 인연이 시작됐다. 내가 글쓰기 상담을 부탁하면서 처음 연락을 드렸다. 그 인연으로 자이언트까지 만나게 됐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인연인데도 이상하게 오래 갔다.


강화도 근처에 있는 주말농장에도 몇 번 놀러 가서 자고 오기도 했다. 흙냄새 나는 밭에서 상추를 따고 감자를 캐고, 밤이면 마루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재작년 여름에는 주언니 차를 타고 신안 소금밭에도 다녀왔다.


그때 함께 갔던 네 명은 모두 온라인에서 이어진 인연이었다. 신기하게도 네 명 모두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고 책을 썼다. 두 동생은 지금 SNS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인연이다. 블로그 댓글 하나로 시작된 관계가 어느새 7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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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언니가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나물을 데쳐 냉동해 둔 것을 여러 봉지 가득 챙겨준 것이었다. 받을 때는 돌덩이처럼 단단했는데 몇 시간 동안 차 마시고 놀다 전철 타고 오는 동안 내 체온에 녹아버린 것이다.


주언니는 늘 그렇다. 만나기만 하면 빈손으로 보내지 못한다. 뭐라도 하나 더 넣어주려고 한다. 그래서 내 가방은 자주 무겁고 가끔은 이렇게 사고도 친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하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말로 전하고, 어떤 사람은 선물로 전한다. 그런데 주언니는 비닐봉지에 담아 전한다. 요란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냥 직접 키우고, 직접 만들고, 직접 들고 온 것. 그게 전부다.


7년의 인연이다. 그 시간 동안 주언니가 내게 건네온 것들을 떠올리면 가슴 한켠이 따뜻해진다. 말 한마디 없이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 비닐봉지 속에 담긴 그것들이 ..


-하략 下略 -




막 쓰는 초고 내용은 어떻게 책이 될까요?


여러분의 좋은 의견도 알려주시면 잘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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